최경호안산시 중앙도서관장
최경호안산시 중앙도서관장

 

오늘은 입춘. 절기로는 봄이지만 설악산뿐만 아니라 하천과 고성 들녘 그리고 도로도 온통 눈으로 덮여있었다. 간성시내에서 길을 잡아 해변으로 나섰다. 눈이 덜 녹아 얼은 길은 미끄러웠다. 앞서 걷던 몇몇이 어이쿠 하며 비틀거렸다. 양달은 봄이었고 눈이 부석거리는 곳은 아직도 겨울이었다. 남천에서 거진항으로 가는 반암해변은 철책 너머로 파도가 찰싹거렸다.

배꼽시계가 울었다. 고성의 겨울음식은 도치두루치기가 유명했다. 지난 번 여행을 하면서 가진항에서 보았던 도치는 곰치같이 살이 흐물흐물 거렸는데 두루치기라니, 그 맛이 궁금해졌다. 갈 길은 멀지만 도치두루치기를 안주로 막걸리를 한 잔 들이켰다. 오늘 걷고 나면 해파랑길 트레킹을 마치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했다.

48코스 종착은 거진항이었다. 주위의 다른 항보다 큰 항구에는 조업을 끝낸 어선들이 바닷물에 몸을 맡긴 채 흔들거렸지만 화진포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저 멀리 눈 덮인 산맥이 희미하다. 금강산 줄기가 아닐런가. 해변에는 김일성별장이, 화진포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부통령별장이 보였다. 권력자들은 좋은 위치에 자신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지했다. 그리고는 국민을 위하고 인민을 위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성게 주산지인 초도항에서는 갈매기들이 바다위에서 먹이를 찾고 있었다.

최북단 항구인 대진항에서 1.5km 떨어진 금강산콘도를 오늘 숙박지로 정했다. 금강산을 갈 수 없는 처지이니 그렇게라도 마음을 위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콘도에서 0.5km 떨어진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까지 걸었다. 군부대차량이 북적거리는 것을 보니 이곳이 최전방이 맞기는 하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배낭을 내려놓고 4년 동안의 여행을 마무리하는 뒷풀이를 거진항에서 갖기로 했다. 대장정을 하는 동안 있었던 에피소드와 웃음이 술 잔 위에 철철 넘쳤다. 여행을 하면서 한 번도 다툼 없었던 이유는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챙겨 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파도는 밤새도록 제 몸을 바위에 부딪치며 부서지고 또 부서졌다.

이튿날, 오전에 비가 내릴 것이라던 일기예보를 비웃듯이 하늘이 맑다. 검은빛이 점점 붉은색으로 변해 가던 하늘에 황금빛이 반짝거렸다. 오늘은 통일전망대를 여행하는 일정이다. 통일전망대신고소에서 출입신고를 한 후 차량으로 통일전망대로 향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있었다. 최북단 명파리 마을에는 인적이 끊겼다. 건어물 상점이나 음식점도 문이 닫혀 진 상태로 임대문의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광고물정비로 마을이 말끔해졌으나 찾는 관광객들이 없으니 주민들 걱정이 날로 더해 갈 것 같았다. 넓은 아스팔트길에 달랑 우리 차량만이 달리고 있다. 길옆에 앉아 있던 꿩이 놀라서 종종걸음을 치더니 하늘로 날았다. 날개를 가진 새들에게는 남과 북의 경계가 없이 오고 갈 수 있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민통선이 시작하는 곳에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사병들이 민통선으로 출입하는 인원과 차량을 확인했다. 이곳에서는 사진 촬영도 허가된 곳에서만 가능했다. 동해남북출입국사무소 광고판이 보였다. 문득 20052월 금강산 여행했던 때가 떠올랐다. 10여 전 금강산 여행자들이 북적거렸던 건물이 휑뎅그렁하게 서 있었다.

통일전망대에는 우리보다 먼저 관광버스 1대가 도착해 있었지만 금강산 관광으로 북적거렸을 때와 비교하면 무척 썰렁했다. 이곳까지 오면서 보았던 DMZ박물관은 아예 문을 닫은 상태였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통일전망대에서는 27km 지점에 위치한 금강산이 보였다. 바다의 금강산이라고 부르는 해금강은 손에 잡힐 듯 했다. 2005년 보았던 북쪽 금강산호텔 앞에 게양되어 있던 한반도기가 아직도 휘날리고 있을까? 그곳에서 맞이했던 강렬한 일출은 영영 잊지 못할 것 같다. 주위에서 생전에 금강산을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6.25전쟁체험전시관에는 한국전쟁 당시 동족상잔의 아픔과 흔적이 고스란히 기록되고 발굴된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여행자 발걸음을 잡은 것은 학도병의 유품인 손목시계와 만년필이었다. 어머니 아버지께 그리고 형제자매와 사랑하는 연인을 그리워하며 편지를 썼을 만년필과 이들과 만난 날을 기다리며 자주 보았을 녹이 스른 손목시계 앞에서 가슴이 저며 왔다.

해파랑길 종점인 50코스 안내표식판 앞에 섰다. 해와 바다의 파랑색을 합쳐서 해파랑길로 명명된 길을 4년 동안 스물네 번에 나누어 764km를 걸었다. 지난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해파랑길 트레킹을 시작하던 오륙도에서 맞이했던 일출은 잊지 못할 것이다. 이기대길이나 영덕 블루로드 그리고 새벽을 깨워 걸었던 수많은 길들이 아른거렸다. 경주 주상절리 등 자연이 빗어낸 관광지와 역사, 문화의 숨결을 느끼게 했던 마을과 상징물들도 인상 깊다. 바닷장어와 과메기, 오징어 그리고 도치두루치기를 비롯한 그 지역 제철 음식을 맛본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했다.

차량을 이용하여 다시 검문소에서 확인을 받은 후 명파초교까지 갔다. 그곳에서부터 통일전망대출입신고소를 빠져 나올 때 몇 대의 승용차가 통일전망대로 들어가기 위해 도착해 있었다. 한반도가 평화통일을 이뤄 남과 북이 새들처럼 자유롭게 오고 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눈이 아직 도로에 쌓여있는데 진부령에 또 눈발이 내렸다. 그래도 봄은 올 것이고 사람들은 이곳을 찾을 것이다.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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