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이주 후 중앙아시아에서 농사짓는 고려인
강제이주 후 중앙아시아에서 농사짓는 고려인

김치를 먹는다고 했다. 반가웠다. 고려인 식당에 가니 메뉴판에 그려진 음식들이 낯익다. 김치와 같은 절임류 야채무침도, 만두와 탕도 보인다. 옆 테이블을 보니 찌개에 보드카를 마시고 있다.
고려인 음식만 있는 게 아니다. 음식마다 국가별 이름이 붙었다. 중국 음식, 러시아 음식, 우즈베키스탄 음식 등. 우즈베키스탄 고기빵부터 중국식 향신료가 가미된 볶음요리까지 다양하다. 이 모든 것이 고려인들 식탁에 오른다.
우즈베키스탄 전통빵(리뾰쉬까)에 고려식 샐러드(카레이스키 살라트)를 곁들여 먹는 식이다. 쌀밥보다 자주 먹는 것이 기름볶음밥(쁠롭)이라 했다. 더운 날씨 탓에 기름을 많이 사용하는 우즈베키스탄 요리방식이 고려인 밥상에도 영향을 끼쳤다. 연해주부터 중앙아시아까지 터전을 옮기며 다민족 국가에서 지내온 고려인의 삶이 식탁에서 엿보인다. 상에 오르는 음식마저 정체성을 지키고 적응하고 변화하며 살아남았다.
북극성 농장에서 벼농사를 짓다
“연해주에서 (증조) 할아버지는 젊은 나이에도 어촌 마을을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고려인 최 이야나씨는 통역을 통해 말을 전했다. 한국에 온 지 2년째라 말이 서툴다. 우즈베키스탄(공화국)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증조할아버지(최 세르게이)가 강제이주 때 열차에 실려 끌려간 곳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어부였어요. 기차가 아랄해에서 멈췄을 때 할아버지가 말했어요. 아랄해에는 어부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여기 내려도 죽고 기차에서도 죽는 거라면 물이 있는 곳에서 내리자고 마을 사람들을 설득했어요”
우즈베키스탄에 정착했다. 연해주에서 한 것처럼 한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그 당시 대다수 고려인들은 농사를 지었다. 밥상에 여전히 오르는 쌀밥. 쌀은 고려인이 중앙아시아로 오게 된 이유 중 하나다.
광활한 미개척지를 농토로 경작해 집단화한다는 소련의 국가계획 하에 17만 명의 고려인이 옮겨졌다. 이들은 집단농장(콜호즈) 소속되어 땅을 일궜다. <북극성> <아방가르드> <볼셰비키> 같은 이름이 붙은 60여 개의 고려인 콜호즈가 생겨났다.
조그만 한국이라 할까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에만 130개 넘는 민족이 살지만, 고려인들로만 구성된 콜호즈에서는 자신들의 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환갑을 갓 넘긴 최 멜리스씨는 어린 시절을 이리 기억했다.
“우리밖에 없어서, 조그만 한국이라고 할까. 마을(콜호즈)을 우리나라라고 생각했어요. 어려서 학교 다닐 때 러시아말 하는 고려인 학생이 있으면 두들겨 팼거든요. ‘너희가 고려 밥을 먹으면서 러시아 방귀를 뀌냐’ 이러면서”
그보다 윗세대인 47년생 김 레오니드씨는 자신은 ‘조선말을 해서 한국어를 못한다’고 했다. 레오니드씨가 말하는 조선말이란, 고려인들이 쓰던 언어로 옛 함경도 쪽 방언에 가깝다. 현재 남한에서 쓰는 말과 다르다고 했다. 그 말조차 많이 잊었다. 그래도 띄엄띄엄 한국어로 소통이 가능하다.
“우리는 삽을 강촤라 했지. 삽이라 안 했지. 사과라 안 하고 능금이라 했어. 강촤가 중국말이었지. 다 섞였어”
레오니드씨는 반평생을 보낸 콜호즈 마을 기억을 더듬었다. 목화솜을 기름에 적셔 만든 등불과 부뚜막. 온돌로 방을 데우고 볏짚으로 지붕을 덮었다. 예전 시골 풍경만 같다.
“예전에는 사립문 안 잠그고 갔어. 담장 없었어. 잘 사는 사람 생기고 도둑이 생겨났어요. 남의 물건 가지고 오는 버릇 조선사람에게는 없었어”
고려인의 밥상처럼
레오니드씨가 자란 곳은 김병화 농장이다. 앞서 언급된 ‘북극성 농장’이 후에 ‘김병화 농장’으로 명칭을 바꾼다. 집단농장 대표였던 김병화를 기념해 붙인 이름이다. 김병화는 두 차례나 소련 당국으로부터 ‘노동영웅’ 칭호를 받은 인물이다.
압도적인 수확량 때문인데, 김병화 외에도 북극성 농장은 25명의 고려인 노동영웅을 배출한다. 이 일은 자부심으로 남아, 한국에 온 고려인들마저 선조의 끈기·근면·영민함을 이야기할 적마다 김병화를 불러온다.
죽음의 열차가 고려인을 실어 척박한 땅에 부려놓고 갔지만 살아남았다. 생존을 넘어 복원하기 시작했다. 강제이주 1년 후, 카자흐스탄에는 이미 87개의 고려인 학교가 문을 연다. 신문사와 출판사를 다세 세운다. 고려극장이 문을 연다. 1932년 블라디보스톡에서 ‘원동변강조선’이라는 이름을 달고 창립한 극장이다. 고려인들과 함께 중앙아시아로 왔다.
고려인들은 마치 그네들의 밥상처럼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변화했다. 동시에 연해주에 두고 온 것들을 복원시키려 했다. 그렇게 역사를 이어갔다.

기록노동자 = 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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