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두 아이들' / 출처=구글
'엄마와 두 아이들' / 출처=구글
안노라 <br>▲‘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br>▲‘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br>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
▲‘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절반쯤 문이 열린 걸까요?
아니예요. 부권을 강조하고 신의 대리자를 자처했던 마지막 중세의 견고함이 깜박 빗장을 잠그는 것을 놓쳤던 거지요.
이어 달려온 근대(近代)는 무척 바쁘고 부산한 일정과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산업 혁명과 시민 혁명이 일어났고 그 에너지가 만든 실금 같은 빛줄기가 어둡고 답답한 사회의 헛간을 기웃댄 거지요.
새로운 시대를 만들 재능이 웅크리고 있던 헛간에서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습니다.
‘자유’라는 단어는 콜레라보다도 강한 전염력을 가지고 천재들을 감염시켰습니다.
그들은 거칠고 무례하고 불안정한 세상으로 살금살금 기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여지껏 본 적이 없던 작품들과 사상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천재들이 신의 정원이 아닌 도시를 산책하던 시절, 19세기가 왔습니다.
이름은 메리 커셋 (Mary Cassatt, 1844~1926)입니다. 피치버그 출신의 부유한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여자였지요. 그리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여자였습니다.
고급스런 드레스를 입고 화사한 부채를 쥐고 음악회를 드나드는 걸 좋아하는 여자가 알맞았을 시기에, 딱하기도 하지요.
그녀는 모작이 아닌 자신의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습니다.
흔히 그렇듯이 자아가 강하고 재능이 탁월한 여자를 사회는 그리 반기지 않았습니다.
그림을 배울 때 꼭 필요한 누드모델을 쓸 수도 없었고 자유로이 바깥에 나가 스케치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추측과 상상으로 그림을 그려야 했지요.
그녀는 미국에서 프랑스로 건너갑니다. 그것도 자신의 독립된 힘, 즉 자신의 그림을 팔아 경제적인 자립을 꿈꾸면서 말이죠.
<엄마와 두 아이들>이란 1906년 작품입니다. 엄마의 무릎엔 어리고 작은 아이가 있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보고 있습니다. 엄마가 보내는 시선의 온도를 재어 본다면 37도 정도겠지요.
체온보다 따뜻한 눈입니다. 아이는 엄마의 보호가 주는 안정감 위에 까만 눈을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아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경계도 없고 낯설음도 없습니다. 그건 ‘호기심’, 자신을 부러운 듯 바라보는 또 다른 생명에 대한 온전한 호기심입니다.
큰 여자아이는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드레스 색만큼 발그레한 볼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아이를 보고 있군요.
몸집이 작은 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어깨에 기댄 채, 동생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 하지요?
“넌 정말 인형 같구나. 너가 와서 기뻐. 하지만 엄마가 너만 사랑하면 슬플 것 같아”
메리 커셋의 그림은 당시 인상주의 화가의 여러 작품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건 ‘촉각적’이라는 거예요. 사물의 시선과 웃음과 자세를 손으로 만져본 후 그림으로 옮긴 듯합니다.
대상과 화가 사이에 ‘따뜻한 손’이 존재하지요.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그녀의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울한 어깨를 감싸 안는 온기가 느껴집니다.
늘 주체적인 삶을 꿈꾸었던 여자, 파리 만국박람회의 심사위원들에게 거듭 거절당하면서도 실망을 딛고 인상주의를 받아들여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었던 메리 커셋.
그녀의 독립적인 자세와 담대하고 예민한 재능은 버지니아 울프의 말을 상기 시킵니다.
“여자는 자기만의 재산과 방해받지 않고 창작할 수 있는 가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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