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에 새 결정체계를 적용하는 방안이 사실상 물건너 갔다. 정부가 이원화를 골자로 하는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을 강하게 밀어부쳤지만, 여야 간 극한 대치로 4월 임시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현행 체계로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결정체계 개편안 추진 과정에서 집단 사의를 표명했던 공익위원들의 거취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최저임금 심의는 또 다른 진통을 겪을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6일 고용부 등에 따르면 최저임금위원회는 오는 8일 운영위원회를 열어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 일정을 논의할 계획이다.

고용부는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부터 새 결정체계를 적용하기 위해 3월 임시국회에 이어 4월 임시국회(회기 5월 7일)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선거법 개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둘러싼 여야의 극한 대치로 국회가 멈춰서면서 4월 임시국회가 ‘빈손’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저임금 고시 시한인 8월5일이 다가오고 있는 만큼 고용부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더이상 심의를 늦추기 어렵다. 고시를 위해 필요한 행정절차 기간(약 20일)을 고려하면 늦어도 7월 중순까지는 결론을 내야 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

최저임금위원회가 8일 운영위원회를 열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고용부 한 관계자는 “지금 국회 상황을 보면 최저임금 개편안 처리가 쉽지 않아 보인다”며 “4월 임시국회 처리가 어렵다면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는 현행 체계대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행 체계대로 심의를 시작한다고 해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또 있다.

현행 최저임금위원회는 노·사·공익 위원 27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공익위원 8명(정부 당연직 1명 제외)이 사퇴 의사를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이들의 사표를 받기는 했지만 수리는 하지 않고 있다. 고용부는 사표수리가 안됐기 때문에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최저임금위원회 운영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공익위원들이 사퇴 의사를 번복하지 않겠다는 뜻을 고수할 경우 사실상 식물위원회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익위원들의 사표를 반려하고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시작해야 할지, 아니면 새 공익위원들을 위촉해야 할지를 놓고 학계와 노동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에서 법 통과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최저임금 심의 시일이 급하기 때문에 현재 공익위원들에 의해 심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공익위익들이 완강하게 나온다면 정부 입장이 난처해지고 모양새도 좋지 않다. 공익위원들이 보이콧 할 명분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결정구조를 바꾸려고 했던 것 자체가 공익위원의 전문성·독립성·중립성에 하자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인데 공익위원들이 낸 사표를 반려하고 계속 최저임금을 결정해 달라고 맡기는 것은 모순”이라며 “공익위원들의 사표를 수리하고 새로운 공익위원 체제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절충안”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는 8명 공익위원 사퇴 반려와 최저임금위원회 참가를 요구하며 정부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민주노총 이주호 정책실장은 “정부가 최저임금 개편안을 무리하게 입법 추진하면서 노사 갈등이 발생했고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총사퇴라는 초유의 파행사태가 발생했다”며 “고용부는 최저임금위원회 파행사태에 대해 사죄하고 즉시 최저임금위원회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공익위원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만큼 기존 공익위원들에게 내년 최저임금 심의를 또 다시 맡기는 데 부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새로 공익위원들을 위촉한다 해도 노사 양쪽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데다, 공정성 논란도 있었던 만큼 후보들을 물색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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