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훈련은 미국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저강도 대외 메시지와 함께 대내적으로 안보를 통한 결집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 같은 군사 행보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6일 "이번 발사는 과거처럼 도발로 보이지 않는다"며 "대외 압박의 성격이 있지만 북한이 비핵화 협상의 성격, 판을 깨지 않겠다는 의도로 수위를 조절한 것 같다"며 김상균 국정원 제2차장의 보고 내용을 공개했다.

이 의원은 "과거에는 괌 타격 계획까지 발표하고 선제타격까지 언급했을 정도로 표현이 과격한 보도를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너희들도 실험하고 훈련하지 않느냐'는 논조였다"며 "그래서 과거와 다르다"고 국정원의 평가를 전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도 이번 발사체를 심각한 수준의 도발로는 간주하지 않고 대화 기조를 이어가는 분위기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여전히 완전한 비핵화라는 협상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믿는다"면서 '미사일'이라는 표현을 피하고 '단거리'라는 점을 재차 확인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에서 이같은 기조를 유지했다.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두 정상은 북한의 최근 진전된 상황을 논의했으며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달성 방법에 대한 일치된 견해를 재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일 동해상에서 대구경 장거리 방사포, 전술유도무기의 타격 훈련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중국도 북미 간 대화 기조를 강조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영구적인 평화의 조속한 실현은 국제 사회의 보편적인 기대이고 각국의 공동 이익에 부합한다"며 "한반도 비핵화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에 각국이 노력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발사체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북한의 보도 역시 대외 메시지보다는 대내적인 훈련에 더 강조점을 둔 것으로 읽힌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5일 보도에서 김 위원장이 "전연(전방) 및 동부전선 방어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했다"면서 "경상적인(일정한) 전투동원준비를 빈틈없이 갖추도록 하는데 목적을 두고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훈련'이라는 점과 '전투동원준비'에 목적이 있다는 부분을 강조한 것이다.

또 통신은 김 위원장이 "그 어떤 세력들의 위협과 침략으로부터도 나라의 정치적 자주권과 경제적 자립을 고수하고 혁명의 전취물과 인민의 안전을 보위할수 있게 고도의 격동상태를 유지하면서 전투력 강화를 위한 투쟁을 더욱 줄기차게 벌려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하면서, 자위권적 측면을 부각시켰다.

중앙통신 영문판에서는 보도 가운데 '그 어떤 세력이 우리의 자주권과 존엄, 우리의 생존권을 해치려든다면 추호의 용납도 없이 즉시적인 반격을 가한다'는 표현을 삭제하기도 했다. 과거 한미 연합훈련이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반발 측면에서 발신했던 메시지를 담지 않은 것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일 동해상에서 대구경 장거리 방사포, 전술유도무기의 타격 훈련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더불어 중앙통신은 같은 날 김 위원장이 함경남도 금야군에 있는 금야강 2호 발전소를 시찰했다고 밝히면서, 대내적으로 안보 분야와 함께 자력갱생과 경제 과제까지 강조하고 나서기도 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 교수는 "(김 위원장이) 안보와 경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대내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군사훈련 역시 대외적인 메시지만큼이나 대내적인 메시지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인민에게는 경제 발전에 매진하라고 하면서 안보는 자신이 책임진다는 부분을 보여준 것"이라며 "북한 입장에서는 적절한 수준에서 '레드라인'을 넘지 않고 훈련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 같은 분석은 김 위원장이 지난해 두드러진 군사 행보를 보이지 않는 부분이 고려됐다. 김 위원장은 남북·북미 대화가 속도를 내던 지난해에는 공개적인 군사 행보를 거의 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국방과학원에서 첨단전술무기를 시험할 당시에도 구체적인 사진은 공개하지 않고 김 위원장의 모습만 공개하면서 절제된 기조(로키·low-key)를 유지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타격훈련으로 절제된 대외적인 메시지를 주면서, 동시에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 다소 후방으로 밀려 있었던 군부의 불만을 환기시키는 목적도 달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일 동해상에서 대구경 장거리 방사포, 전술유도무기의 타격 훈련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우리 군 당국도 이번 발사체에 대해 외부적인 도발보다는 내부적인 훈련 쪽에 무게를 두는 듯 보인다.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국방부 보고 내용을 공개하며, "만약 도발 개념이었다면 예전처럼 새벽에 미상의 장소나 도로에서 발사했을 것인데 아침 9시에 개방된 장소에서 쏜 것은 도발 의도보다는 타격 훈련에 대한 것이었다는 게 (국방부) 나름의 평가"라고 전했다. 

이어 "지난 4일 신형 전술무기와 방사포를 다수 발사했는데 만약 이게 전략무기 발사를 시도한 것이었다면 현장에서 김낙겸 북한 전략군 사령관이 지휘했을텐데 전술 무기였기 때문에 박정천 조선인민군 포병 국장이 현장지도를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북미 대화에 간극이 지속되는 한 이 같은 군사 행보가 계속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북러 정상회담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평안남도 순천비행장을 불시에 방문해 비행훈련을 지도하는가 하면, 바로 이어 국방과학원에서 신형전술유도무기 사격시험을 참관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조만간 대화를 재개할 것이라는 메시지로 읽기에는 아직 이르다"면서 "김 위원장이 앞으로도 (내부 결속을 위해) 군사 현지지도를 계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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