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구글】

 

안노라 <br>▲‘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br>▲‘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br>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
▲‘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20여 년 전, 직장에서 피곤한 몸을 가누고 집에 돌아오면 소박한 밥상의 반찬이 돼주던 <전원일기>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농촌의 하루하루를 수채화로 그린 듯 담담하면서도 맑고 깊었지요. 책으로 치자면 고전의 반열에 오른 배우 최불암 씨와 김혜자 씨가 부부로 나왔습니다. 이 드라마는 1,088부작, 20여년의 장대한 시간 동안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식된 수많은 삶을 쓰다듬고 다독였습니다. 

동무들과 누가 더 오래 숨을 참을 수 있는 지 내기하던 개울가가 그립고, 이른 새벽이슬을 헤치고 소꼴을 베어 지게로 나르던 아부지의 안부가 궁금해 졌으며, 밭에 쭈그리고 앉아 종일 호미질을 하던 어무니 생각에 코가 시큰했지요. 구멍 난 풀의 한 쪽을 개구리 똥구멍에 꽂고 바람을 불면 동그랗게 부풀어 오르는 배를 보며 까르르 거렸던 고향의 웃음소리, 해가 산 고개를 넘으면 외양간에 소가 큰 소리로 울며 무서워했던 유년의 어스름이 내 몸 어딘가에 숨 쉬고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지요. 그건 아름다움이었을까요? 그리움이었을까요? 아니면 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자연의 숭고함이었을까요? 

오늘은 산업의 발달로 자신의 땅에서 스스로를 추방한 인간들이 끝내 그리워했던 자연이 주인공입니다.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7)의 <건초마차>를 소개합니다. 

더운 여름 오후입니다. 푸른 초원 아득히 뭉실한 구름이 하늘을 가득 덮었습니다. 화면 앞 구름은 해의 그림자를 얹었는지 약간 검게 그늘져 있습니다. 왼쪽 모퉁이에 물레방아가 돌고 있군요. 시냇물의 번짐이나 물기둥이 없는 걸로 봐서 물레방아는 게으름 피우듯 천천히 돌고 있습니다. 굽이진 시냇물 가운데로 바퀴가 잠긴 건초마차가 농부의 발걸음에 맞춰 건너가고 있습니다. 
말들은 잠시 쉬고 싶은 모양입니다. 말의 등은 유순하고 힘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깨를 비비는 나뭇잎들은 보드랍고, 햇빛은 물 위에 반짝이고 바람이 귓가를 속삭이는 여름날, 시원한 이곳에 머무르고 싶겠지요. 물가엔 어리고 눈빛이 맑은 소녀가 아버지를 기다리며 작은 손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을 것 같은 오두막집이 있습니다. 
고요한 저녁이 오면 고소한 빵 굽는 냄새가 나겠지요? 별들이 시내에 내려와 세수도 하겠지요? 자갈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시냇물처럼 건초마차는 시냇물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고 지나갑니다. 주인을 바라보는 개도 느긋합니다. 평화롭고 한적한 시골풍경이네요. 

이 그림을 그린 존 컨스터블은 평생을 영국 서퍽(suffolk)지방에서 살았습니다. 옥수수와 목초지, 아름다운 나무들이 많고 실개천이나 수풀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물정에는 어두웠지만 자연이 주는 숭고한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밝았습니다. 그 당시 풍경화는 그림의 여러 장르 중 특히 주목받지 못하는 분야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조금도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연이 주는 색과 느낌과 구도에 매혹 당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눈을 믿었고 매끄럽고 유창하지는 않지만 진심을 담아 대형 캔버스 위에 자연의 진솔함을 담았습니다. 프랑스 자연주의 화풍인 바르비종파는 그에게서 큰 영향을 받습니다. 

그는 “조심성 없던 어린 시절” 로 인해 화가가 됐다고 했습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조심성 없음으로, 그런 천진함으로, 그는 자연 그대로를 담을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의 그림은 <윌든 Walden>의 작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와 더불어 번거로운 삶의 소란함에서 벗어나 게 하는 21세기, 영혼의 필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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