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치오]            그림출처 = 구글
[세네치오] 그림출처 = 구글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두 손으로 별을 가득 움켜쥐었다 캄캄한 밤하늘에 뿌렸다고 생각해 볼까요?
제각각 빛의 크기와 밝기에 따라 밤하늘은 거대한 빛다발이 되겠지요. 그때, 누군가가 별을 하나씩 집어 모양을 만든 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예요.
큰곰자리, 작은곰자리, 사자자리, 전갈자리들에 관한 이야기를요. 아름다운 혼돈의 별들에게 조형성을 주어 우주의 별자리를 만드는 것이지요.
빛들이 뿜어내는 아우라가 우리의 상상 너머를 보여 줄 거예요. 어때요? 신비롭지 않은가요?
미술사에서도 이와 같은 이야기꾼이 있답니다.
그의 이름은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예요. 아버지는 대학에서 성악과 음악을 가르쳤고 어머니는 음악 교사였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에 뛰어난 기량을 보였고 이미 열한 살 때, 스위스 베른 시 관현안단의 특별 연주자로도 활동했답니다.
그는 그림 솜씨도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틈틈이 시를 쓰고 문학에도 재능이 많았는데 고등학교 졸업 즈음, 음악가, 화가, 작가의 길 중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실존적 고민을 하게 되지요.
그는 화가의 길을 걷기로 합니다. 음악과 문학에 비해선 회화 분야가 예술적인 성장을 더 필요로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20세기 초의 예술은 예술가들의 머릿속에 있는 모든 이미지를 작업대 위에 올려놓고 실험하고 분해해 보던 시기였습니다.
입체파, 야수파, 표현주의, 구성주의, 원시주의 등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예술을 목격하는 시대였지요.
평생 음악을 가까이 했던 파울 클레는 캔버스 위에 음악적 요소와 회화적 요소를 결합시키려는 시도를 합니다.
음이 갖고 있는 추상성을 자유롭게 배열해 보고 캔버스 위에 형상과 리듬을 만들어 내고 싶어 했지요.
그는 화학자가 원소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물질을 탄생시키듯 그림에 몰두했어요.
그래서 클레의 회화는 ‘그림으로 연주한 음악’이라고 하지요. 점토, 유리, 신문지, 붕대, 천, 판지 등을 캔버스 대신 쓰기도 하였고 그림 밖으로 밀려났던 문자를 캔버스 위에 화려하게 부활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는 시와 음악과 미술이라는 별들을 재배치해 추상미술이라는 별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위의 그림은 1922년 작 <세네치오>입니다. 자화상을 그린 것이지요. 정사각형에 가까운 캔버스에 동그란 얼굴입니다.
눈은 따뜻하게 정면을 응시하지만 동일한 시점과 동일한 곳을 응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왼 쪽 눈은 세상을 향해 직진하지만 오른 쪽 눈은 상상에 빠진 눈동자가 내면 풍경의 모호함을 보여 줍니다.
단순하게 생략된 선, 부드럽고 편안한 색, 평면적이지만 말을 건네면 미소를 띨 것 같은 입체감, 어린아이에게 동화를 읽어 주는 것 같은 순수함이 화면에 배어나옵니다.
당시 독일에서는 순수 회화에서 확장된 실용 디자인 중심의 <바이하우스>가 건립되었는데 파울 클레는 그 곳의 교수로서 재직하기도 했습니다.
낯선 조합을 통해 회화의 지평을 넓히려고 했던 실험가 파울 클레는 나치 집권 시, 102점의 작품을 몰수당하고 ‘퇴폐예술가’로 지목되어 말년을 스위스에서 보냅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정확한 원인과 치료법을 알 수 없는 ‘전신경화증’을 통한 급성 심부전으로 1940년 6월29일 사망했습니다.
매년 6월29일은 세계 경피증의 날(World Scleroderma Day)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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