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 깜빡이를 켜고 나선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셈법이 다시 복잡해지는 모양새다.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금리인하를 향한 문을 열긴 했는데 이번에는 꿈틀거리는 부동산 시장이 눈에 밟히는 상황이 됐다. 금리인하로 대출금리가 내려가면 그동안 규제로 억눌려 있던 부동산 투자 심리가 자칫 자극될 소지가 있어서다. 
한은은 지금까지 저금리 장기화에 따른 부동산 시장 과열과 가계빚 급증 문제 등 금융불균형에 대해 늘 경계해왔다. 다시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게 되면 금융안정을 강조해온 한은 입장에서는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행보를 지켜볼 시간도 필요하다. 아직 금리인하 카드를 꺼내들지 않은 연준보다 앞서 금리를 내릴 경우 역전된 금리차는 더 벌어지고 자본 유출 위험도 커질 수 있다. 시장에서는 이미 금리인하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지만 일각에서 실제 단행되기까진 상당기간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주열 한은 총재의 금리인하 시사 발언으로 연내 인하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은 커졌으나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은 남아있는 분위기다. 이 총재는 지난 12일 ‘제69주년 한은 창립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통해 “최근 미·중 무역분쟁, 반도체 경기 등 대외요인의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진 만큼 그 전개 추이와 영향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경제상황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금리인하에 명확하게 선을 그어오던 이 총재가 필요할 경우 금리인하도 검토하겠다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통화정책 스탠스에 변화가 생긴 것은 경기 하강 추세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금리인하 압박이 커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올들어 수출과 투자가 역주행하는 등 한국 경제는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4% 뒷걸음질치며 10년 만에 최저치로 내려앉더니 4월 경상수지마저 7년 만에 적자를 냈다. 지난달 수출액도 전년대비 9.4% 줄어 지난해 12월부터 6개월째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대비 30.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의 경기 추세로 보면 7월 수정경제전망에서 한은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5%에서 다시 낮출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만약 한은이 성장률 전망치를 내린다면 경기둔화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결국 금리인하 수순으로 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런데 잠잠했던 부동산 시장이 불안한 흐름을 보이는게 문제다.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이달 둘째 주 서울 강남구 집값은 지난해 10월 이후 8개월 만에 상승 전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7개월 만에 올랐다는 민간 정보업체의 조사 결과도 나왔다.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금리인하가 투자 심리를 부추기는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금리인하로 유동성이 더 풀려나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갈 여지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최근 주춤해진 가계빚 증가세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가계빚은 지난 1분기 기준 1540조원을 돌파한 상황이다. 
‘금리인하=경기부양’ 공식이 예전만큼 잘 통하지 않는 점도 통화정책을 딜레마에 빠트리는 요인이다.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 등 내수가 부진한 것은 시중에 돈이 덜 풀렸다기 보다는 돈이 제대로 흐르지 않는 이른바 ‘돈맥경화’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는 분석이 많다. 때문에 금리인하가 단행되더라도 경기부양 효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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