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이동통신사에 갑질을 했다는 혐의로 제재 심의를 받고 있던 애플코리아가 공정거래위원회에 합의안을 제시했다. 애플은 강력한 협상력을 이용해 통신3사(SK텔레콤·KT·LG유플러스)에게 아이폰 광고비와 무상수리비용 등을 떠넘긴 혐의로 공정위 제재를 앞두고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4일 애플로부터 동의의결 신청을 받았다고 4일 밝혔다. 동의의결 제도란 공정위 제재가 내려지기 전 회사가 지적받은 문제에 대해 스스로 시정방안을 마련해 인정받는 제도다. 공정위가 시정안을 수용한다면 더 이상 위법 여부는 묻지 않고 사건을 종결시킨다.

공정위는 2016년 애플 조사에 착수, 지난해 법원의 1심 재판에 해당하는 내부 전원회의에 해당 안건을 상정시켰다. 이후 공정위와 애플은 치열한 법리다툼에 돌입했다.

특히 애플은 “재벌 기업인 한국 통신3사를 대상으로 어떻게 갑질을 하느냐”라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거래상 지위 남용’이라는 혐의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공정위는 전원회의를 세 차례나 열었지만 여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양측의 논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데다 공정위 입장에선 글로벌 기업 애플에 대한 제재가 워낙 민감한 사안인 탓이다. 특히 최근에는 미 무역대표부(USTR)가 “한국 공정위가 기업의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않는다”며 문제삼고 나선 바 있어 더욱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동의의결을 받아들일지 결정하려면 심의는 다시 중단된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돼 벌써 반년을 훌쩍 넘긴 심의가 더욱 길어지는 셈이다.

이번에 애플이 동의의결 신청을 한 것을 두고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특히 동의의결이 받아질 경우 애플 입장에선 위법 여부를 따지지 않고 싸움을 끝낼 수 있다. 한국 공정위가 애플의 거래 관행에 대해 위법하다고 결론내리고 제재를 할 경우 다른 나라 경쟁당국에겐 참고할 선례가 생긴다. 전세계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자사의 전략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업계에선 수백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과징금 조치보다 오히려 이 점을 더 주목하기도 한다.

송상민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통상적인 동의의결 절차에 대해 “회사 입장에선 공정위 제재를 받고 대법원까지 법리 다툼을 하는 선택이 있고 그전에 위법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신속하게 사건을 종료하는 선택이 있다”며 “나름대로 비용 분석을 해보고 어느쪽이 자기 상황에 적절할지 판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애플이 공정위에 낸 시정방안에는 거래관행의 개선안을 비롯해 상대 이통사에 대한 상생방안 등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의의결 수용 과정에선 이통사들도 애플의 시정방안에 대해 반대의견을 낼 수 있다.

송 국장은 “애플이 제출한 방안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공정위 제재 전 동의의결을 신청한 가장 최근 사례는 골프존(2018년), LS(2018년), 현대모비스(2017년), 퀄컴(2016년) 등이 있지만 모두 기각됐다.

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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