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야카는 먼지에 뒤덮여 거의 원래 형체를 분간할 수 없어진 매트를 밟고 현관 바닥에 내려섰다. 그동안 나는 현관 옆에 있는 신발장을 열어 안을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운동화 두 켤레와 검은 가죽구두 한 켤레 그리고 여성용 갈색 구두 한 켤레가 들어있었다. 신발장 밖에는 한 켤레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큰 집에 신발이 전부 네 켤레밖에 없는 건 좀 이상했다. 집에 사람이 살고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은 아슬아슬한 긴장감, 짜릿한 스릴이 넘치는 소설이다. 일본 추리소설의 대가 히가시노 게이고(61)의 1994년 작품이다. 일본에서만 75만부가 팔리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7년 전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면서 시작된다. 여자친구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해 수수께끼 집을 방문, 사건을 추리해나가는 이야기다.
작가 스스로 ‘야심작’이라며 자신감을 표하기도 했다. 히가시노 작품 중 연극적인 구성이 돋보인다. 주인공은 단 두 명, 무대는 한적한 숲 속의 회색 집이다. 시간은 만 하루로 한정돼있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곳곳에 복선을 심어놓는 히가시노의 장기가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촘촘한 스토리텔링에 허를 찌르는 반전이 더해지면서 지루할 틈이 없다. 
“그 벽을 두드려봤다. 통통, 속이 빈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뛰는 걸 느끼며 벽을 꼼꼼히 살펴봤다. 딱히 이상한 점은 없었기에 다음으로 다시 벽장 안을 보았다. 안쪽 베니어합판의 허리께쯤 오는 위치에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크기의 나뭇조각 두 개가 못으로 고정돼 있었다. 그걸 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고정돼 있지 않던 판이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옮긴이 최고은씨는 “별다른 사건이나 다양한 등장인물 없이도 독자의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심리적인 힘을 가진 걸작이다. 히가시노의 소설이 그 드라마성에 비해 등장인물 내면의 심리묘사는 다소 구체적이지 않다 느꼈던 독자라면, 분명 이 작품이 그 갈증을 얼마쯤 매워줄 것이다”고 했다. 
히가시노는 “소설 속에도 나옵니다만,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궁전 유적에 왕과 왕비의 방 같은데, 배수 시설이 불완전하고 사용된 자재를 고려할 때 계단 등에 사용 흔적이 거의 없는 신기한 방이 있다고 한다. 그 이야기에서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을 착안했다”고 전했다. “오래된 집이라든지 지금은 쇠해 무엇도 아니지만 과거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에서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추리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매력적이라 생각한다.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은 그러한 골자를 극단까지 파고들어 완성한 작품이다. 묘한 공포를 발현한다고 자부한다” 320쪽, 1만3500원, 비채 
지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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