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의 노구를 이끌고 필리핀을 찾아 일본 제국주의 만행을 증언한 이용수 할머니에게 세계인들의 박수와 눈물이 동시에 쏟아졌다. 이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당사자로서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일본정부에게는 눈엣가시같은 존재다.

26일(현지시간) 오후 필리핀 마닐라 콘래드 호텔에서 경기도와 (사)아시아태평양평화교류협회가 개최한 ‘2019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는 공동발표문 발표를 앞두고 마련된 이 할머니의 증언으로 술렁였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연단에 오른 이 할머니는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갈 당시의 참혹한 기억을 떠올렸다. 할머니가 흐느낄 때마다 남과 북을 비롯해 10여개국 300명의 참가자들은 일본 제국주의에 희생된 10대 소녀의 아픔을 상기하며 함께 눈물을 쏟았다.

이 할머니는 특히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가 도출한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대해 부당함을 역설했다.

앞서 2015년 12월28일 한일 정부는 합의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를 둘러싼 지난한 갈등을 접기로 했다. 합의는 한국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 정부는 10억엔의 예산을 거출해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 회복,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시행한다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피해 당사자가 배제된 밀실외교의 결과물인 이 합의가 부당하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된다. 여기에 아베 총리가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무의미하게 만드는 강경발언을 연일 내뱉으면서 비난이 폭주한 바 있다.

이 할머니는 이 합의의 부당함을 강조하며 “저는 오늘도 그랬고, 그저께도 그랬고, 내일도 아베를 세계에 고발한다. 오늘 여기서도 세계법에 따라 고발한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가 “내가 올해 92살이다. 많지 않다. 활동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농담을 하자 웃음이,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일본 아베를 용서할 수 없다. 200살을 살아서라도 (세계)여러분들한테 일러바칠 것”이라고 외치자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이 할머니는 이날 행사에 북한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한 리종혁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바라보며 “북한에서 온 손님들 우린 남이 아니다. 내가 끌려갔을 때는 조선이었다”며 “옛날에 9박10일 동안 북한에 갔다. 거기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다 만났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일본은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 우리가 원래 뭐가 일본보다 부족했는가. 어느 나라보다 앞서는 게 조선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과 북한의 협력관계 구축을 부탁했다. 83세의 고령이지만 이 할머니보다 한참 연하인 이 부위원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한편 이 할머니 옆에는 역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필리핀 에스텔리타 디 할머니(89)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자리해 눈길을 끌었다. 디 할머니는 이 할머니의 말에 공감하면서 “일본 정부로부터 정식사과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황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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