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기 위한 법령 개정을 추진 중인 가운데 한국 통상이 또 다른 악재를 맞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잘 사는 나라’로 분류해야 한다면서 그간 개발도상국 지위에서 누려온 혜택을 뺏어야 한다고 주장한 탓이다.
29일 산업통상자원부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서 개도국 우대(S&D)를 규정한 조항은 약 150여개에 달한다. 개도국은 이를 활용해 공산품과 농산물 관세 적용에서 선진국보다 유리한 조건을 오랜 기간 유지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혜택이 필요 없는 국가들이 스스로 개도국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현재 WTO 체제에서는 ‘자기선언 방식’으로 개도국 지위를 얻을 수 있다.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다른 WTO 회원국들보다 약한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는 것이다. 
개도국 지위 문제는 도하개발어젠다(DDA) 출범 때부터 논란이 된 사안이다. 국제사회 규범체계가 선진국과 개도국이라는 이분법적 분류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왔다.
2000년대 중반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중심으로 개도국 분류 세분화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다만 WTO에서는 개도국들의 강한 반발로 관련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올해 초 미국은 구체적인 개도국 분류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현재 OECD 회원국이거나 가입 절차를 밟고 있는 국가, 주요 20개국(G20), 세계은행에서 고소득 국가로 분류한 국가, 세계상품무역에서 비중이 0.5% 이상인 국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를 기준으로 일부 개도국을 선진국으로 재분류하거나 개도국 졸업 개념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이 제시한 4가지 기준에 모두 해당한다. 1인당 실질소득(GNI)이나 국내총생산(GDP), 인간개발지수(HDI) 등도 선진국그룹 평균과 차이가 미미하거나 오히려 앞선다. 우리가 현재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브라질과 대만이 개도국 우대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언급했고, 중국도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면서 상응하는 의무를 이행하겠다고 공언했다”며 “우리나라 역시 최소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우리나라가 개도국 우대를 받지 못하게 되면 농산물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자료를 보면 농산물 관세는 선진국의 경우 5년에 걸쳐 50~70%를 감축하고 개도국은 10년 동안 33~47%를 줄이게 된다. 평균적으로는 약 20%포인트의 감축률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이외에 개도국은 특별품목 지정과 특별세이프가드(SSM)를 통해 관세 적용에 상당한 융통성을 제공받고 있다.
김완배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농업 문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가는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라며 “정부는 국제 정세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고 나이브하게 대처해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다만 미국 등 선진국에서 주장하는 새로운 개도국 지위 결정 방식과 분류 세분화는 현실적으로 도입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WTO는 164개 회원국들이 협상을 통해 자국의 이익과 양보의 균형을 찾아가는 협의체”라며 “미국의 주장은 기존 개도국들의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고 수용하지 않는 나라들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이유로 2001년 시작된 도하라운드 협상도 20년 가까이 교착상태”라고 덧붙였다.
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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