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의 춤] 그림출처 = 구글
[콜롬비아의 춤] 그림출처 = 구글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꽃과 마약’ 어울리나요? 종이는 아무리 얇아도 앞면과 뒷면이 있습니다. 앞면이 꽃이라면 뒷면이 마약일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극단적 이미지의 불일치를 한 몸에 안고 신음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콜롬비아의 ‘메데인’입니다. 이곳은 세계적인 마약 상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메데인 카르텔’의 본거지이자 네덜란드에 이어 세계 최대 꽃 생산지이며 오늘 소개할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1932~ )의 고향입니다.
야만의 문명이 총구를 겨누기 전, 금과 에메랄드의 고향이기도 했습니다. 귀한 자원과 넓은 땅, 생에 대한 정열과 선량한 마음씨들이 모여 사는 아름다운 곳에 콜럼버스가 도착했습니다. ‘개화’와 ‘문명’이라는 이름이 상륙하자 ‘영원한 봄의 도시’라는 별명을 지닌 이곳은 ‘마약’과 ‘독재’와 ‘폭력’의 특별거주 지역이 되었습니다.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낭만과 자유로움을 그리워하며 현재의 고단함을 기록한 <콜롬비아의 춤>을 소개합니다. 고국의 현실에 눈 감지 않은 그의 언어로 그의 희망을 읽어 볼까요?
화면이 터질 듯합니다. 가스가 팽팽하게 주입된 애드벌룬처럼 통통거립니다. 사과가 떠 있고 담배가 흩어져 있는 비현실적인 공간 위를 두 명의 댄서가 춤을 추고 있군요. 붉고 검은 정열적인 의상은 화면 가운데로 시선을 이끕니다.
라틴 아메리카는 예로부터 룸바, 살사, 탱고, 쿰비아 등 그들의 원시적 역동성을 드러내는 뜨거운 춤이 많았습니다. 토착민인 인디오, 스페인의 오랜 지배로 인한 이베리아,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들의 문화가 섞여 라틴 특유의 이국적이고 정열적인 문화를 만들었지요.
그런데 음악과 춤이 있는 장면 치고는 몹시 적막하지 않은가요? 춤을 추고 있는 두 남녀의 표정이 경직되어 보이는군요. 음악이 춤을 추기엔 적절하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연주자들을 살펴볼까요? 더블베이스와 기타는 현이 없군요. 공명하는 울림구멍도 없거나 아주 작습니다. 항아리처럼 부푼 관악기로는 소리를 밖으로 밀어 내지 못합니다. 플롯처럼 보이는 악기는 너무 작습니다. 연주자와 댄서는 있는데 음악과 춤은 없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요?
그의 조국은 1970~80년대 독재 치하였습니다. 독재는 이권과 결탁하기 마련이고 치안은 갈수록 불안해 졌습니다. 아픈 가족이 있어도 밤엔 약을 사러 나가지 못했고, 어린 아이는 굶주렸으며 일자리는 없었습니다. 궁핍은 쉽게 마약의 카르텔에 더 많은 수의 국민이 빠져들게 했습니다. 민주주의는 절름거렸고 언론은 소리 내지 못했습니다.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은 엄격히 제한되었지요. 저 <콜롬비아의 춤>에서의 연주자들처럼 악기를 가지고 있되 소리는 낼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만의 방법인 대상의 볼륨감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보테로몰프’ 기법으로 저항합니다.
그의 무기는 부드러움과 풍만함입니다. 정물도 인물도 풍경도 풍만하다 못해 육중하게 부풀어 있습니다. 부피감 있는 인물들은 물리적이고 신체적인 슬픔과 고통을 비현실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내전의 참혹함도 분홍과 주황을 입혀 날 것으로 대면하게 하지 않습니다. 사납고 거친 주제도 가볍고 여유 있고 심지어 따뜻하게 전달할 줄 압니다. 미망인의 가난한 집, 둘째 아들로서 자라나 독학으로 회화를 공부했지만 관습적 화풍이 그를 길들이기 전에 독자적인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내었습니다.
양감과 색감과 형태에 숨어 있는 그의 무겁고 진지한 메시지를 찾아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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