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고려인들의 대축제인 3회 고려아리랑행사가 97일 안산시 선부광장에서 개최된다.

3회 고려아리랑은 국내정착 10만 고려인과 함께 러시아 연해주 한인(이하 고려인)의 독립운동 역사를 계승하며, 고려인 강제이주 82주기를 기억하고 위로하기 위한 자리로 마련된다.

또한 행사를 통해 10만 고려인 체류관리 정책이 정착지원으로의 전환을 기대하며 정부 및 지자체에서 고려인 정착지원 정책이 적극 시행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1. 국내정착 10만 고려인과 함께하는 축제(3~ 8)

10만 고려인은 안산, 인천, 화성, 평택, 안성, 광주, 경주등지에서 아이를 키우며 국적회복을 기대하며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불안전한 신분으로 절대 다수가 일일파견노동으로 10년 넘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러시아 연해주 지역을 개척하고 대한독립운동 발판을 만들었던 역사와 1937년 강제이주 이후 소금밭 뻘밭에서 희망을 만들었던 고려인이기에 그들과 함께하는 축제는 더욱 의미 있습니다.

 

만세행진 3.17 연해주 독립선언 재현

고려인의 길 전시

독립운동 영웅 존 영웅코스프레

고려인의 춤과 노래 신명과 난장

플리마켓 예술체험

고려인 먹거리 장터 유라시아의 맛

 

그리고 오후 6시에는 고려인강제이주 82주기를 위로하고 고려인독립운동을 선양하며 국내체류 고려인을 환영하는 기념식이 진행 됩니다.

기념식 기념사에서 윤화섭 안산시장님은 국내정착 10만 고려인에 대한 환영의 인사와 더불어 안산시 고려인독립운동 기념비 건립에 대해 말씀하실 예정입니다.

 

2. 러시아 연해주 고려인독립운동 역사를 계승합니다.

1905년 이전부터 강도일본과 매국노에 의해 대한제국은 대 혼란에 빠집니다. 이 혼란의 도가니 속에 우리민족은 연해주를 개척하고 떠나온 조국을 걱정합니다. 조국을 걱정하는 이들은 연해주에 학교를 세우고 신문을 발행합니다. 또한 실업을 장려하여 고려인의 경제적 힘도 키우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체호를 비롯한 안중근 홍범도등의 독립지사들이 연해주로 모이게 되었고 1907년부터는 국내 진공작전과 저격 작전을 계획하고 실행합니다.

이러한 연해주 고려인들의 역량은 1910년 이후 성명회 권업회 대한광복군정부 대한인국민회 한인사회당으로 이어지고 19193.1독립선언에 즉각적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임시정부 대한국민의회를 러시아 연해주에서 1919317일 결성하게 됩니다.

고려아리랑은 연해주 고려인들의 이러한 독립운동의 역사적 전통을 계승합니다.

 

3. 고려인 강제이주의 역사적 비극을 위로합니다.

1937년 후반기 연해주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라는 명령이 모스크바로부터 하달되어 99일부터 약 두 달 사이에 약 172천명의 한인들이 연해주로부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되었습니다.

1937년의 한인 강제이주에 대해서는 아직도 밝혀져야 할 사실들이 많습니다. 강제이주의 진정한 이유는 무엇이며, 그것이 필연적인 것이었는지? 강제이주는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 또한 강제이주를 전후하여 숙청되거나 처형된 한인사회의 지도자 혹은 지식인들이 2,500여 명이라는 지금까지의 추산이 맞는 것인지? 최근의 연구로 조금씩 강제이주의 실상이 베일을 벗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역사적 사실로서보다는 신화로서 전해지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다음 하나의 사실만은 분명하다. 1937년 강제이주를 통해 1860년대 이래 대규모 한인사회가 자리 잡았던 연해주는 그 후로 오랫동안 우리의 역사 무대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비극의 역사를 기억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역사적 정의를 밝혀 고려인 강제이주의 아픔을 위로 하여야 합니다.

 

4. 국내정착 10만 고려인을 환영해 주세요.

(‘꼬레아우라를 함께 외쳐 주시면 더욱 좋습니다.)

정확이 언제부터 고려인들이 경기도 안산시 땟골 등지에 집단 거주 하였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1995년 전 후로 고려인들은 e9비자를 통해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 하였으며 2003년 이 후부터 재외동포비자 또는 방문취업비자를 통해 한국에 머물며 불법취업을 하였으며 2013년 이후 경직된 재외동포비자와 방문취업비자의 취업조건이 완화 되어 그나마 고려인들 취업활동의 어려움이 일부 해소 되었습니다.

 

국내에서 고려인과 관련한 기념식은

2014고려인이주 150년 기념식

20171회 고려아리랑 <함께 부르는 고려아리랑>

20182회 고려아리랑 <고려인 미래세대와 함께 부르는 고려아리랑>

 

이와 같이 기념식과 축제에서 안산시장님은 함께 하시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2017년에는 대한민국 국회를 대표해서 정세균의장님이 고려인강제이주 아픔을 위로하고 고려인 국내정착을 환영해 주셨습니다.

 

2019년 또한 전국에서 고려인은 안산으로 모입니다.

안산으로 모인 고려인을 직접 환영해 주세요.

눈인사도 좋고 악수도 좋습니다.

고려인이 만든 음식을 먹고 꼬래아 우라를 외쳐도 좋습니다.

그리고 대동의 춤을 함께 만들어요.

 

5. 고려인 체류관리 정책이 정착지원 정착으로 전환되기를 기대합니다.

중앙아시아에서 고려인은 이방인이라 합니다.

한국에서 고려인은 동포이지만 외국인으로 분류됩니다.

외국인으로 분류되어 다문화 정책에서 소외되어 어떠한 복지 체계에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영유아 출산을 비롯하여 영유아 돌봄 정책에 고려인은 배제되어 있습니다.

초중고 언어지원 고려인 미래세대는 부모와 함께 이곳저곳을 떠 돌다 한국에 입국하며 한국에서도 부모의 일자리로 안산, 인천, 화성, 평택등을 떠 돌게 됩니다. 이러한 고려인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대책이 필요합니다.

일자리지원 일부 조사에 의하면 고려인은 60%이상이 파견노동직에 종사한다고 합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허위의병장 후손 기소피아 또한 국적을 회복하였음에도 일일파견 노동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고려인이 일일파견 노동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일자리 정보가 고려인에게는 닿지 않으며 닿는다 한들 통역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파견회사 만큼 그것을 공공적으로 도와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6. 3회 고려아리랑을 통해 정부와 지방도시에서 고려인 정착지원 정책이 시행되기를 기대합니다.

2013년부터 우리는 <고려인특별법 개정>을 통해 해외에 있는 고려인뿐 아니라 국내에 정착을 시도하고 있는 고려인에 대한 정부의 보살핌과 지원을 기대 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려인특별법>은 여전히 계류 중 입니다. 그것은 외교부, 노동부, 복지부등의 부처 간 책임은 안지고 문제만 나열 외교적 문제가 있다.’ ‘노동시장 문제가 있다.’ ‘의료복지에서 선별적인 것은 어렵다.’등등의 이유로 <고려인특별법 개정>을 통한 고려인 정착지원은 3.1혁명 연해주 대한국민의회 독립선언 100주년인 지금도 가능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나마 광주에서 시작된 <고려인지원조례>가 경기, 안산, 인천, 경주등지에서 제정 되었습니다.

고려인지원조례 제정에 힘입어 2016년 대한민국 최초로 고려인 정착지원기관 <안산시 고려인 문화센터>가 개관 됩니다. <안산시 고려인 문화센터>에서는 고려인을 위한 통역지원 언어지원과 더불어 언어, 문화 시민교육이 매우 활기차게 진행되어지고 있습니다. 안산시는 2020년에는 더 큰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기도 또한 20197<경기도 고려인 정착지원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경기도 고려인 정착지원 정책을 수립함과 동시에 예산편성까지 추진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안산시와 경기도의 이러한 노력에 매우 감사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이 국내정착 10만 고려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하며 아래와 같이 부탁드립니다.

 

  • 기념비건립을 통해 강제이주 된 17만 고려인의 역사성을 회복해 주십시오.
  • 10만 고려인에 대한 종합적 지원계획을 실행할 부처를 정해 주시고 <고려인특별법>을 개정해 주십시오.

3. 고려인밀집지역 지방정부에서는 아래와 같이 고려인정착지원 정책을 세우고 실행해 주시기를 기대 합니다.

1) 통번역 지원

2) 언어, 문화, 역사, 시민교육, 공동체지원

3) 일자리 지원, 긴급의료지원

4) 출산 및 영유아 돌봄지원과 미래세대 교육 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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