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말 서울 어느 여대 기숙사, 은희경 장편 ‘빛의 과거’
70년대 말 서울 어느 여대 기숙사, 은희경 장편 ‘빛의 과거’
  • 경기매일
  • 승인 2019.09.0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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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저마다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본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도 각자의 기억은 다르다.
은희경(60) 장편소설 ‘빛의 과거’는 1970년대 말 서울 어느 여자대학의 기숙사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갓 성년이 된 여성들은 타의에 의해 임의로 배정된 네 명이 한 방을 쓴다.
국문과 1학년 김유경의 322호 룸메이트는 화학과 3학년 최성옥, 교육학과 2학년 양애란, 의류학과 1학년 오현수다.
최성옥과 절친한 송선미의 방인 417호 사람들(곽주아, 김희진, 이재숙)과도 종종 모이곤 한다. 3월 신입생 환영회, 봄의 첫 미팅과 축제, 가을의 오픈하우스 행사 등 주요한 사건 위주로 펼쳐진다.
그들은 각자 성년이 되어가는 문으로 들어간다. 낯선 세계에 대한 긴장과 혼란과 두려움 속에서 자기 인생을 만들어간다. 중년이 된 김유경이 오랜 친구 김희진의 소설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를 읽게 되며 소설은 시작된다.
대학 동창인 그들은 절친하다거나 좋아하는 친구라고는 말할 수 없다. 어쩌다 보니 가장 오랜 친구가 된 묘한 관계다. 같은 시공간을 공유했으나 전혀 다르게 묘사된 김희진의 소설 속 기숙사 생활을 읽으며, 김유경은 자신의 기억을 되짚는다. 
1970년대의 정치·문화적 시대상이 뚜렷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그때 학생들은 독재 정권에 맞서 전단을 돌리고 어용 총장 임명에 항의해 검은 리본을 달았다. 학생운동을 하다 구속·구금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모범생들은 눈치를 본다. 문제를 낸 사람과 점수를 매기는 사람의 기준, 즉 자기를 어디에 맞춰야 할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답을 맞히려는 것은 문제를 내고 점수를 매기는 권력에 따르는 일인 것이다. 그렇게 그저 권력에 순종했을 뿐이면서 스스로의 의지로 올바른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모범생의 착각이다. 그 착각 속에서 스스로를 점점 더 완강한 틀에 맞춰가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진짜 모범생은 아니었다. 나는 부모와 고향을 떠나는 순간 거짓 순종과 작별할 생각이었다.”
“비관은 가장 손쉬운 선택이다. 나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적게 소모되므로 심신이 약한 사람일수록 쉽게 빠져든다. 신체의 운동이 중력을 거스르는 일인 것처럼, 낙관적이고 능동적인 생각에도 힘이 필요하다. 힘내라고 할 때 그 말은 낙관적이 되라는 뜻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낙관과 비관의 차이는 쉽게 힘을 낼 수 있는지 아닌지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역설적인 점은 비관이 더 많은 희망의 증거를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어둡고 무기력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은 작가는 “이 책은 나의 여덟번째 장편이다. 10년 전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여섯번째였을 것이다. 8년 전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제목은 ‘번개 들판’이었겠고 내 주인공은 처음 계획대로 오십대 초반이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3년 전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내 어머니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연희문학창작촌으로 나를 찾아와 어린 시절 내가 얼마나 의젓한 아이였는지 몇 번이고 얘기해주었다. 그해 가을 잠을 설친 어느 새벽 토지문화관에서 어머니의 부음을 들었다. 다음 해 21세기문학관에서 가까스로 이 소설을 시작할 수 있었다. 모두 감사드린다.”
342쪽, 1만4000원,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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