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노라의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
안노라의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
  • 경기매일
  • 승인 2019.09.0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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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_39 약자들의 위엄과 품위를 기록한 화가
세바스티안 데 모라 / 출처 = 구글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고대 이집트인들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건 심장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라를 만들 때, 끝이 구부러진 고리를 코 속으로 집어넣어 뇌수를 제거했습니다.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요.
현대 의학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심장이 아닌 뇌, 특히 전두엽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뚱뚱하든 날씬하든, 검은 피부든, 흰 피부든, 여자든 남자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인간의 뇌는 인간에게 자신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깨닫게 해 주는 본질적 주소입니다.
과학이 동등한 인권을 주장하기 전, 신분제 사회였던 17세기에 광대나 난쟁이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사회적 약자였던 그들의 모습을 스페인의 왕실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 1599~1660)가 그렸습니다.
벨라스케스는 스페인 남부의 세비야에서 태어났습니다.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의 무대이기도 하지요. 그는 포르투갈에서 이민 온 소 귀족 출신이었습니다. 열 살 가량의 어린 나이에, 당시 화단을 주름잡던 화가 ‘프란치스코 파체코’의 제자가 되었고 스물 네 살에 필리페 4세의 화가가 됩니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17세기의 스페인 마드리드와 오스트리아 빈의 합스부르크 왕가는 멀고 험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었습니다.
두 왕가는 지속적인 연대를 위해 왕과 왕손의 모습을 초상화로 그려 안부를 주고받았고 벨라스케스는 그 일을 맡아 했습니다. 그는 ‘초상화의 대가’로 불리게 됩니다. 그런 그가 귀족과 왕실의 초상화가 아닌 천하고 멸시받았던 난쟁이와 광대들의 초상화를 남겼습니다.
이 그림을 보시겠어요? 그림 속, 모델의 이름은 <세바스티안 데 모라>입니다. 궁정의 난쟁이였지요. 유난히 쭈그러진 피부와 성장이 멈춘 몸, 기형적인 비율로 인해 뒤뚱거리는 걸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앉아서 똑바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의 눈에는 무기력함이나 비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동정을 구하는 시선이나 귀족들의 비위를 맞추며 웃음과 재주를 파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입술을 굳게 다물고 두 손을 힘 있게 그러쥐고 관람자를 쳐다봅니다. 만일에 누군가가 그를 조롱한다면 당장 허리춤에서 칼을 뽑을 것 같은 위엄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정사각형에 가까운, 꽉 찬 캔버스는 그가 당면한 비좁고 출구 없는 세계를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당시 스페인 궁정은 권력과 명예와 경제적 자원이 한 곳에 집중되었던 절대 왕권의 시기였기에 몹시 보수적이고 엄격했습니다. 화려함과 부유함이 넘쳐났지만 그 이면엔 권력 유지를 위한 모략과 술수가 범람하였고 근친혼에 따른 유전병으로 왕가의 자손들은 앓거나 단명했습니다. 난쟁이들은 숨 막히는 궁정의 공기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산소호흡기 역할을 했습니다.
왕족들은 여러 명의 난쟁이와 광대를 왕실에 두고 세상의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로 무료함과 권태를 달래려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때로 왕자와 공주의 잘못을 대신 감당하는, 매 맞는 시동이자 ‘살아있는 장난감’으로, 또는 정상적인 몸을 갖고 있는 귀족들의 우월감을 만족시켜주는 ‘열등한 존재’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난쟁이를 바라보는 벨라스케스의 시선은 차분했습니다. 차별이나 왜곡이 없습니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때로 이용하며 현실을 극복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인간 그대로를 그렸습니다. 벨라스케스는 위대한 궁정 초상화가로서 후세에 우뚝 선 이름입니다. 뿐만 아니라 뭇 사람들의 조롱과 천대를 받던 이들의 인간적 힘과 품위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뜨거운 휴머니즘의 기록자로서 더욱 빛나고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는 영원불멸을 믿었습니다. 태양의 아들 ‘라’가 죽으면 저승의 신인 오시리스의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했지요.
오시리스의 심판을 받고나서 다시 돌아와 머물 육체를 보존하기 위해 왕이 죽고 나면 그의 몸을 방부 처리해 미라로 만들었습니다. 장과 위와 폐와 간은 카노푸스 단지에 담았고 심장은 몸에 남겨두었습니다. 오시리스 앞엔 저울이 있는데 한 쪽 저울엔  깃털을 얹고 다른 한 쪽 저울엔 몸 안에 남겨둔 심장을 얹습니다. 심장이 깃털보다 더 가벼우면 살았던 모습으로 다시 환생하는 것이지요. 깃털의 무게는 삶의 순도에 대한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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