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56) 장편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 개정판이 나왔다. 신부 서품을 앞둔 젊은 수사 ‘요한’의 이야기다.
2013년 첫 출간 당시 13만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프랑스·베트남에서 번역·출간됐으며 영화화가 결정됐다.
인생·사랑의 섭리를 예민한 감수성으로 그려냈다. 가톨릭 수도회와 한국전쟁의 흥남철수 사건을 소설의 두 축으로 삼았다. 신의 뜻에 순명해야 하는 수도자들과 전란에 휩쓸려 생의 갈피를 잃어버린 이들의 삶을 투영, 인생의 봉우리를 넘는 순간 우리를 일으켰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묻는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수도사들의 인간과 신을 향한 사랑,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까지 다양한 사랑을 논한다. 사랑은 신의 다른 이름이며 우주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수도자가 죽으면 그를 수도원 목공실에서 짠 관에 입관시킨 후 이틀 정도 수도원 1층 성당에 놓아두었다. 세속에서의 장례와는 달리 시신은 모두에게 보여진다. 나는 그때 죽은 사람의 얼굴이 저렇게 고요하고 저렇게 편안하고 저렇게 순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평소에 입던 수도복을 입은 채 두 손을 가슴에 얹은 상태로 그는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우리의 생을 뒤바꿔버린 사건이나 시간들을 통틀어 떠올려보면 그때는 보지 못했던 징후들이 마치 영화의 티저 영상처럼 삶의 거리 여기저기에 깔려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살갗에 닿는 바람결로 봄을 느끼기 전에 이미 여기저기서 조그만 들꽃의 싹이 피어나고 뜻밖에도 양지쪽에 보랏빛 제비꽃이 피어난 걸 보게 되듯이. 몸이 봄을 느끼기 전에 봄의 징후들이 도착하듯이”
공씨는 “이 소설을 쓰기 전인 2012년은 많이 힘든 해였다. 나는 ‘하느님 대체 왜?’라는 오래된 물음과 격렬하게 씨름하기 시작했다. 몸은 피곤했고 마음은 황폐해졌다.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2013년이 왔다. 새해를 맞으면서 나는 희미하게나마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이 거칠고 품위 없는 세태가 나를 휩쓸어가기 전에 더 근본적인 것에서부터 하나씩 다시 시작하자고 결심했던 것 같다. 지금이야말로 본질로 돌아갈 시간이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상황 자체에 집착하지 말고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질문하는 본연의 태도로 돌아가는 게 맞겠다 생각했다. 나는 소설을 시작할 때가 왔음을 느꼈고 기다렸다. 나는 내 소설의 배경 뒤 저 깊은 구석에서 빛을 위하여 어둠으로 기꺼이 존재하셨던 그분을 보았다. 삶은 잔인하고 기이하며 때로는 신비롭다. 어느 하나만 계속되지 않는다. 오오, 누구였던가. 그리 말했던 이는. ‘인간이여, 말대답을 하는 그대는 정녕 누구인가?’”
400쪽, 1만6800원, 해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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