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사랑가’가 장조라면, 북한의 ‘사랑가’는 단조예요. 계급 사회의 시각을 반영한 거죠. 밝은 쪽보다 어두운 쪽의 명분입니다”(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
“사-랑- 사- 랑- 내 사랑-이야.” 판소리 ‘춘향가’ 또는 창극 ‘춘향전’을 통해 익숙한 노랫말은 비슷한데, 선율은 전혀 다르다. 민족관현악과 양악관현악이 일대일로 배합된 전면배합관현악이 들려주는 멜로디와 리듬도 낯설다. 발성법도 차이가 있다. 오페라와 엇비슷하게 들린다. 
춘향과 몽룡, 두 사람에 집중하는 국내 ‘사랑가’ 장면과 달리 군무가 함께 한다. 밝은 분위기로 설렘을 담은 판소리와 창극의 ‘사랑가’와 달리 애절함을 넘어 언뜻 비장미마저 흐른다. 
국립국악원이 26일 오후 7시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북한 민족가극 ‘춘향전’ 상영회를 열었다. 북한 민족음악 이론의 핵심이 담긴 ‘춘향전’이 국내에 처음으로 상영됐다. 공연이 아닌 공연을 촬영한 영상물을 공개하는 자리였지만, 흥미로운 구석이 많았다. 
‘춘향전’은 1988년 북한의 평양예술단이 창작한 민족가극이다. 고전소설 ‘춘향전’을 각색, 공연한 것이다. 북한 민족가극의 최고 작품으로 꼽힌다. 혁명가극의 출발과 전범(典範)이 된 작품이 ‘피바다’라면 민족가극의 시작이자 전범은 ‘춘향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 이야긴데, 풀어내는 방식은 달랐다. 종종 전통을 소재로 한 뮤지컬 또는 가무극처럼 보이기도 했다. 서장 ‘사랑의 노래’에 이어 1장부터 7장까지 이어지고 종장 ‘전하리 춘향의 노래’로 마무리됐다. 중간마다 볼거리를 위한 군무 신이 삽입됐다. 
변학도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북한의 민족가극 ‘춘향전’에만 추가된 장면이 있다. 신관사또가 기생점고 후 춘향을 찾아오라며 사령을 보낸 사이 백성들이 몰려와 환자쌀(관에서 백성들에게 꿔주는 곡식)을 요구하는 장면이다. 변사또는 한말을 빌려주는 대신 가을에 두말을 돌려 받으라며 악착함을 보인다. 그의 얼굴은 악독한 표정으로 과장돼 있다. 
천현식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는 “변학도가 춘향에 대한 욕심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착취하는 탐관오리임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고 짚었다. 
가장 달라진 점은 방자와 향단이의 성격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소설 속처럼 천한 행동으로 웃음을 주지 않는다. 근로 계급으로 춘향을 성심성의껏 도와주는 인물로 형상됐다. 
천 연구사는 “민족가극 ‘춘향전’은 양반과 상민들의 계급적 대립을 바탕으로 춘향의 몽룡에 대한 절개를 그리는 것이 특징”이라면서 “춘향과 몽룡의 참된 사랑으로 고상한 도덕과 윤리를 교양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해설을 맡은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예술로 함께 대표)은 “우리가 아는 원작에 기초한 춘향전이라기보다 각색된 춘향가”라면서 “오페라를 보거나, 국악적인 측면만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두 가지를 접목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봐야 편하게 즐길 수 있다”고 했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형식이라 초반에는 낯설지만, 아는 이야기에 웃고 울게 된다. 러닝타임이 2시간15분이라 짧지 않지만 시간은 훌쩍 간다. 
김희선 국립국악원 연구실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라면서 “의상 하나, 표정 하나, 대사 하나를 잘 살피면 흥미롭고 감동도 주고 울림도 준다”고 봤다. 
북한에서 직접 민족가극 ‘춘향전’을 관람한 김철웅은 “우리가 같아지기 위해 감상하는 것”이라면서 “다르다는 생각보다 문화적인 부분에서 만큼은 남북이 같다는 것을 느꼈으면 한다”고 바랐다.
안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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