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출처 = 구글
[요람]출처 = 구글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21세기, ‘방랑’은 침몰한 단어입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부둣가에서, 공항에서 쉼 없이 사람들은 쏟아져 내리고 다시 어디론가 떠나지만 방랑은 아닙니다. 방랑이란 말에는 ‘이리저리’라는 지향 없음이 숨겨져 있고 ‘떠돌다’라는 불안정성이 함의(含意)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우리 사회는 불안정을 수용할 만큼 너그럽지 못합니다. 결론이 정해진 토의, 분명한 목적지가 있는 걸음이어야 고개를 끄덕입니다. 19세기, 재능 있는 많은 여인들은 자신을 찾아 방랑했습니다. 격자 울타리가 쳐진 사회의 그물에서 벗어나려고 했지요. 일과 사랑에 대한 방랑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갖게 된 여류화가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1841~1895)의 <요람>입니다.
아이는 요람에 곤히 잠들어 있고 엄마는 아이를 보고 있습니다. 위로 올린 단정한 머리, 가지런한 줄무늬로 대변되는 수수한 옷차림에 예스런 초커가 고풍스럽습니다. 아이를 향해 살짝 비낀 실금 같은 코 선은 섬세하고도 지적인 그녀의 품성이 엿보입니다. 왼 손으로 턱을 고인 그녀는 시름없이 앉았습니다. 아이도 엄마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아는 걸까요? 왼 손을 올린 같은 포즈로 편안합니다. 엄마와 아기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희고 투명한 캐노피는 아이를 번잡한 세상에서 보호하는 연약한 막입니다. 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자애로움이 가득한 풍경인데 언뜻, 화면 밖으로 “휴우”하는 한숨이 새어나옵니다. 어디서 들리는 소리일까요?
이 모델의 주인공은 에드마 모리조와 그녀의 딸, ‘블랑쉬’입니다. 에드마 모리조는 베르트 모리조의 언니랍니다. 그러니까 베르트 모리조는 언니와 조카의 모습을 그린 것이지요. 베르트와 에드마는 프랑스 중부 부루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도지사였고 전통적인 화가집안이기도 했습니다. <그네>를 그린 로코코 미술의 대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가 증조할아버지입니다. 고위 관리로서의 권력과 그와 걸 맞는 부를 소유한 아버지는 자매에게 문화적 소양을 키우고 예술적 재능을 지원합니다. 19세기 말, 여자들에게는 공식적인 배움의 길이 없었습니다. 그림을 가르치는 파리의 ‘에꼴 데 보자르’는 여자의 입학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뛰어난 미모와 탁월한 재능을 겸비한 베르트와 에드마는 당대 최고의 화가 까미유 코로에게 그림을 배웁니다. 두 자매는 누구보다 친밀했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고전명작을 모사하며 결혼 대신 ‘화가’가 되기로 약속하지요.
그때도 지금도 개인이 사회의 공고함을 이기기는 쉽지 않은가 봅니다. 언니 에드마는 해군장교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사회적 공간과 지위와 안정감을 주는 대신 자신의 분방함과 자유로움, 재능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게 만들지요. 아마도 그런 언니의 한숨이 들렸나 봅니다.
1874년, 첫 인상파 그룹전에 선보인 <요람>이라는 작품에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화가의 꿈을 놓아버린 현실 사이의 쓸쓸함을 예리하게 포착한 베르트의 영민함이 엿보입니다. 언니와는 달리, 베르트는 기존의 관습에 나긋나긋하지도 예의바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도발적이고 감각적인 예술 실험을 단행하지요. 당시 인상파 화가들, 특히 마네와 교제하며 자연이 가진 빛의 약동을 작품에 투영합니다.
1874년~1886년 사이 열린 인상파 전시회에도 꾸준히 작품을 전시하여 여류작가로서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알립니다. 그녀는 새장을 벗어나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었던 제비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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