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도 두려워한 근대 최고의 마키아벨리스트 조제프 푸셰. 그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출현, 그리고 왕정복고가 연이어 휘몰아치는 세계 전환기를 살았다. 거의 모든 정파를 이끌었고 모든 정파가 와해된 뒤에도 유일하게 살아남았으며 나폴레옹과 로베스피에르 같은 거물들과 벌인 심리전에서 승리한 인생행로는 그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이다. 
  수도원의 교사였으나 훗날 교회를 유린했고,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 선언을 이끌고 백만장자가 되었으며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귀족이 된 기회주의자 조제프 푸셰는 항상 승자 편에 서며 권력을 탐했다.
  세계 최고의 전기 작가로 평가받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스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1881~1941)는 1929년 가을, 잘츠부르크에서 ‘조제프 푸셰 평전’을 탈고한다. 천재가 천재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평전을 쓸 당시 츠바이크는 시와 단편 소설을 발표해 명성을 쌓아 나갔고 세계 여행을 하면서 여러 나라의 작가, 유명인사들과 교류하던 생의 절정기였다.
“이렇게 인간의 영혼을 공부하는 순수한 즐거움에 빠지다 보니 나는 어느새 조제프 푸셰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이런 유형의 인간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종족이지만 우리는 이 종족에 관한 연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이 종족에 속하는 푸셰 같은 인물을 해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서문 ‘우리는 왜 이 기회주의자의 삶을 알아야 하는가’에서)
사실 츠바이크가 푸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푸셰에 대한 발자크의 언급 때문이다. 발자크는 소설 ‘신비에 싸인 사건’에서 “어떤 사람은 보이는 표면 아래에 항상 아주 깊은 심층을 지니고 있어서 그가 무슨 일을 하는 순간에 다른 사람들은 그 의중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없고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푸셰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라고 언급했다.
놀랍지 않은가. 팔색조 같은 변신으로 인해 당대인으로부터 매도의 대상이었던 인물이 이토록 다른 평가를 받다니. 그것도 발자크로부터.
츠바이크는 발자크의 인물평에 매료된 나머지 “배신자, 모사꾼, 파충류, 변절자”로 불리며 프랑스 혁명을 배후 조종한 푸셰를 소환해 마치 우리 속에서 살아 숨 쉬는 한 인간으로 생동감 있게 묘사한다. 예컨대 프랑스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지고 의원들이 투표를 통해 혁명을 추인해야했던 1793년 1월 16일, 푸셰는 어떤 쪽을 택했던가.    
나폴레옹은 10년 넘게 푸셰를 경찰장관 등으로 등용하지만 1815년엔 나폴레옹이 약자였다. 당시 나폴레옹의 운명은 자신에게 대여한 주군과 황제라는 외관을 걸치고 있었을 뿐이다. 그의 권력은 실체가 없는 그림자에 불과했다. 반면 푸셰는 에너지가 넘쳤다. 그러나 나폴레옹과 벌인 최후의 결전에서 푸셰는 패배하고 몰락하고 만다.   
  푸셰의 팔색조 같은 삶을 들여다보면 친일에서 친미로 옮겨 다니며 살아남은 보수 우파를, 혹은 사회 개혁을 외치면서도 특권을 향유하는 강남 좌파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정상원 옮김. 이화북스, 384쪽,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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