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손실이 난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의 투자자 절반 가량이 60세 이상으로 드러나면서 고령층의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뤄진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안전자산 추구 성향이 강한 고령층이 DLF 같은 원금 손실위험 100%인 상품에 몰린 것은 은행들이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거나 아예 안전자산으로 오인하게끔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이 과정에서 은행들이 불완전 판매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분쟁 조정 등을 통해 접수된 의심 사례들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
3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주요 해외금리 연계 DLF 관련 중간검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의 해외금리 연계 DLF에 가입한 개인 투자자는 3004명으로 전체 투자자(3243명)의 대부분인 92.6%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60대 이상 투자자의 비중은 1462명으로 개인 투자자의 절반(48.4%)에 달했다.
통상 고령 투자자들은 안정 지향성이 높은 편이다. 은퇴 이후 소득이 줄기 때문에 노후 준비 등을 위해 자산을 보수적으로 굴리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투자한 금액은 모두 3464억원으로 50대 이하의 투자금액(3100억원)을 364억원 앞질렀다. 고령 투자자 1명당 약 2억3000만원씩 가입한 것이다. 연령대별 투자 현황을 보면 우리·하나은행의 DLF에 가입한 60대는 819명으로 모두 1717억원을 투자했고, 70대는 446명(1717억원), 80대는 189명(543억원) 등으로 집계됐다. 90대도 8명으로 모두 14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조사됐다.
고령층의 손실액은 지난 8월7일 기준 358억원으로 확정됐다. 남아있는 판매액(2787억원) 대부분도 손실구간에 진입해 예상 손실액은 1546억원(지난달 25일)으로 추정됐다. 현재 상태로 손실률이 확정될 경우 60대 이상 고령층에서만 1904억원을 날리게 된다. 원금이 거의 반토막 나는 셈이다.
피해를 호소하는 투자자 대부분은 “은행들이 원금을 잃을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연 4%짜리 예금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독일이 망하지 않는 한 손실은 없다고 했다”며 DLF가 안전자산인줄 알았다고 주장했다. 은행들이 DLF의 손실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실제 금감원 중간조사 결과에서도 이러한 정황들이 포착됐다. 우리은행은 ‘원금 손실확률 0%’라고 적힌 자료를 영업점에 판매 자료로 쓰도록 전송했고, 직원들은 실제 마케팅에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은행 직원들이 고객들에게 발송한 광고 메시지에는 “세계 최고 안전자산인 독일 국채금리에 6개월만 투자해보세요”라고 기재됐다.
하나은행 프라이빗뱅커(PB)들이 사용한 고객 포트폴리오 제안서에도 ‘2008년 금융위기 같은 쇼크에도 안정적’이라는 문구 등이 적혀있던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정의연대 법률지원단장을 맡은 신장식 변호사는 “은행들은 해당 상품을 원금 손실이 없는 안전자산이라고 오인하도록 직원들을 교육하고 마케팅했다”며 “금융소비자를 기망한 사기성 판매”라고 강조했다.
특히 두 은행들은 영업점과 PB에 ‘안전자산(예금형)’ 선호 고객을 타깃팅하도록 유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20~30대보다는 어느 정도 자금 여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안정 지향적인 고령층이 집중 타깃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DLF 가입 문턱이 기존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아진 점도 큰 돈을 맡기는게 부담스러운 고령 투자자들에게 유인책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로 인해 손실 위험을 감수할 능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고령층 투자가 몰리면서 DLF 사태에 따른 피해도 커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투자자 중에서는 ‘공격투자형’의 자산가들도 있긴 했지만 퇴직금이나 노후에 대비해 그동안 모아놓은 자금 등을 쏟아부은 투자자들이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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