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빠' 출처 = 구글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엄마한테 야단을 맞았습니다. 두 눈에 힘을 주어 그렁그렁 떨어지려는 눈물을 간신히 담아냅니다. 무엇 때문에 야단맞았는지는 이미 기억에 없습니다. 그저 엄마가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주위가 텅 빈 것 같습니다. 책 한 권을 들고 책상 밑으로 들어갑니다. 책상 밑은 꼬마가 웅크려 앉아 책을 읽기에 적당한 공간입니다. 손에 잡힌 <그림 없는 그림책>은 도시로 떠나온 가난한 화가에게 고향에서부터 친구였던 달님이 지난 밤, 보고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내용입니다.
달님이 들려준 두 번 째날 이야기지요. 어린 소녀는 어제 밤, 짓궂게 닭장 속의 암탉과 병아리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 바람에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들었지요. 그런데 오늘, 무심코 내려다보는 달님의 눈에 닭장으로 살금살금 걸어가는 소녀가 보입니다. 얄미운 마음에 어서 아버지가 나와 꾸중해 주었으면 하는 순간, “너 거기서 뭐하려는 거야?”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어린 소녀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겨우 대답하지요. “닭장에 들어가서 암탉들에게 입을 맞추고 어제 저녁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말하려고 했어요.” 아버지와 달님은 소녀의 눈과 입에 입을 맞추어 주었답니다. 이렇듯 작고 내밀한 은유들로 가득 찬 ‘그림책’이라는 우물에서 목을 축이지 않은 유년은 없을 것입니다. 이번 주는 조금 다른 영역을 들여다볼까요?
상상이라는 벽돌로 아이들의 왕국을 만드는 앤서니 브라운(Anthony Browne 1946~  )의 그림, <우리 아빠>입니다. 물감에 마법을 섞어 놓았나 봅니다. 아빠는 한달음에 달을 뛰어 넘습니다. 아빠의 힘세고 건장한 팔과 다리는 앞으로 쭉 뻗어나가고 뒤로 힘껏 당겨졌습니다. 펄럭이는 가운이 마녀의 빗자루도 없이 얼마나 높이, 멀리 뛰는 지 보여줍니다. 불 켜진 창문과 높은 굴뚝과 달빛 내려앉은 나무들도 훌쩍 지나갑니다. 하늘의 별들이 깜짝 놀랍니다. 점박이 강아지도 별들의 자지러지는 소리에 달빛 튀는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아빠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합니다. 그림은 눈이 아닌 마음이 읽습니다.
앤서니 브라운은 영국에서 그림책을 대상으로 하는 최고 영예인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습니다. 2000년, 그림책 작가들의 꿈인 ‘안데르센 상’도 수상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우리나라에도 여러 번 전시되어 아직 제대로 어른이 되지 못한 이들을 부끄럽게 하고 눈 맑은 어린 아이에게 유머와 따스함이 넘치는 세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기발한 상상력과 시적인 리듬, 낙관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만 현실을 알록달록하게 포장하지 않습니다.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며, 다양한 상징과 비유, 풍자를 통해 삶의 어둡고 무거운 면을 단단한 구조로 풀어냅니다. 어린아이만이 아니라 동시대인이 공감할 수 있는 철학적 메시지를 품고 있지요. 그는 붓으로 그림을 그렸을 뿐이지만 시대는 그 그림에서 잃어버렸거나 낡아 터진 것들이 갖는 소중함을 건져 올렸습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영롱하게 만들었을까요? 그는 예민하지만 무뚝뚝하고 강하지만 자상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깊이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낮에는 그와 형에게 럭비를 가르치면서도 저녁을 먹고 나면 시를 읊거나 책을 읽어 주셨지요. 감정이 섬세하고 새끼를 절대적으로 보호하는 힘 센 고릴라가 그의 그림에 즐겨 등장하는 바탕에는 풍부한 감수성으로 그를 키워낸 아버지의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우리 아빠>에서 아이는 말합니다. “나는 우리 아빠가 정말 좋다. 왜 그런지 알아? 아빠가 나를 사랑하니까.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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