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타의 일
박서련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끝없이 비교당하며 경쟁할 수밖에 없었던 자매의 이야기다.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 ‘똑똑한 수아의 동생 경아’에서 ‘예쁜 경아의 언니 수아’로 바뀌었을 때, 그리고 착하고 예쁜 동생이 드리운 그늘을 확인했을 때 수아는 의식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대신 무엇이든 열심이지만 공부 머리는 좀 떨어지는 동생이 아르바이트와 임용고시 준비를 병행하는 언니를 대단하게 생각하길 바랐다. 하지만 착한 동생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 무리하지 마 언니. 나 너무 걱정돼 언니”였다. 김샐 만큼 착했던 동생 경아가 죽은 뒤, 언니 수아는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동생의 진짜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2019년 청년 여성들의 일상 곳곳에 스며든 폭력과 상처, 무탈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늘 위험 속에 살아가야 하는, 공포와 긴장이 펼쳐진다. 한겨레출판사, 292쪽, 1만4000원

◇ 이제야 언니에게
창비가 새롭게 선보이는 경장편 시리즈 ‘소설Q’의 첫번째 작품이다. 소설가 최진영이 ‘문학3’ 온라인 지면을 통해 연재할 당시, 독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던 작품을 새롭게 탈고했다. 주인공 ‘이제야’의 일기 형식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다. 성폭력 피해자인 여성 ‘이제야’가 절망 앞에서도 끝내 무릎 꿇지 않으며 들려주는 목소리가 울림을 안긴다. 1980~90년대 학창시절을 겪었던 보편적인 ‘여성’의 유년서사와 더불어 남성에 의한 폭력에서 살아남은 피해생존자 여성의 언어를 날것으로 문학의 자장 안으로 옮겼다. 이는 문학이 과거의 야만을 고백하는 일을 넘어서 현재 20~30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여전히 존재하는 내면의 불안과 분노를 밀도 있게 증언하는 일이기도 하다. 최 작가는 “내면에 축적된 가해자의 언어와 행동방식이 얼마나 농후했는지 새삼 발견하고 깊은 반성과 슬픔으로 제야의 마음을 상상했다”며 “방관과 의심 속에서 홀로 버티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기에, 제야에게 위로가 될지도 모를 장면을 쓸 때는 제야의 고통을 묘사할 때만큼 주저했다”고 말했다. 249쪽, 1만4000원

◇ 이상 연구
문학평론가인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의 연구서다. 절판된 ‘이상 텍스트 연구’를 대폭 수정하고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을 보완했다. 이상 문학을 이해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베일을 벗기고 이상의 삶의 행적과 그 문학적 실천 과정을 추적했다. 권 교수는 “이상 문학은 가장 특이하고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된다”며 “그렇지만 상호 텍스트성의 관점에서 볼 경우 그것은 새로운 텍스트의 창조를 통해 도달하고 있는 성과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상 자신이 기존의 텍스트를 변형시키고 새롭게 재결합시키면서 구축한 상호텍스트적 공간이 그의 문학의 폭과 깊이를 더해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상 문학의 독창성이라는 신화는 오히려 그가 기존의 모든 문학 텍스트들에 의존하여 아주 자유자재로 글쓰기를 실천했다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상의 실험과 도전은 자기 텍스트에 갇혀서가 아니라 새로운 다른 텍스트를 향해 텍스트의 경계를 넘어섬으로써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민음사, 808쪽, 3만원

◇ 피츠제럴드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는 1920년대 재즈 시대가 낳은 최고의 스타다. 헤밍웨이, 포크너와 함께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길 잃은 세대’를 대표하며, 20세기 최고의 미국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남겼다. 저자 최민석씨는 유령 시나리오 작가로 살다 생을 마감한 할리우드에서부터 볼티모어와 프린스턴을 거쳐, 가장 찬란한 시절을 보낸 뉴욕까지 피츠제럴드의 삶과 문학의 여정을 따라간다. 소설만큼이나 극적인 그의 삶의 자취를 좇으며, 시시때때로 가방에서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꺼내 읽는다. 피츠제럴드를 찾아가는 여행은 할리우드에서 출발한다. 아내 젤다의 정신병, 알코올중독, 막대한 빚으로 밑바닥까지 추락한 피츠제럴드는 유령 시나리오 작가로 살았다. 재기를 꿈꾸며 ‘마지막 거물’ 집필에 몰두하지만, 그는 결국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연인 세일러 그레이임의 집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최씨는 “피츠제럴드만이, 세상의 불편한 문제를 문학적으로 대담하게 대면했다”며 “그가 다룬 문학적 주제는 계급”이라고 전했다. 아르테, 316쪽, 1만8800원

◇ 호재
황현진의 장편소설이다. 무책임한 부모 대신 고모 내외에게서 성장했지만 지금은 가족과 연락을 끊게 된 여성 ‘호재’와, 부재하거나 불능인 아버지들의 세계에서 희생을 자처한 여성이자 호재의 고모인 ‘두이’의 시선과 회고로 구성된다. 고모부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죽음의 원인을 직감케 하는 미스터리와 그 죽음을 둘러싼 운명의 가혹함을 드러내는 하드보일드를 축으로, 끝내 정점까지 치달아 오른다. 문학평론가 허윤은 “황현진은 쉽게 떠날 수 없지만, 인정할 수도 없는 가족의 비밀을 하드보일드하게 담아낸다”며 “착한 여자로 희생하는 삶을 산 고모를 낭만화하여 연민하지도 않고, 짐짝처럼 거추장스러운 아버지를 증오하지도 않는다. 망가진 가족과 그 원인인 아버지를 타자로 사유하는 자리에서, 이 소설은 출발한다. 한국 소설은 아버지에 대해 늘 너무 많이 이야기해 왔다. 이미 낡고 녹슨 가족 이야기로부터 거리를 취하려는 황현진의 태도가, 그야말로 여성적이다”고 읽었다. 민음사, 208쪽,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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