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지 3주가 넘어가도록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의 유입 경로가 규명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초기 방역 수준이 기존 가축 전염병 대응 정도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나왔다.
질병 확산이 완전히 차단되지 않은 상황이라 피해 규모가 더욱 커질 수 있는데도 바이러스 매개체를 판별하기 위한 검사의 규모가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8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2019~2020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 검사를 위한 조사 계획’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부터 내년 3월까지 총 2만3000건의 야생 철새 분변을 채취해 AI 바이러스를 검사할 계획이다. 철새 분변 시료를 매달 4600여건씩 검사하는 셈이다.
반면 올해 들어 야생 멧돼지의 ASF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채취한 시료 건수는 2100여건에 그친다. 한 달 평균 240건에 그쳐 AI 검사와 20배 이상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야생 동물 질병 관리 소관 부처인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 2일까지 야생 멧돼지 806마리에 대해 ASF 항원을 검사했다. 농식품부 산하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지난달 말까지 민간 수렵인들로부터 야생 멧돼지 혈액을 넘겨받는 방식으로 ASF 검사를 진행했는데, 항원 715건, 항체 1310건에 대해 완료한 상태다.
조사에 동원되는 인력 규모도 큰 차이를 보인다. AI 바이러스 검사를 위해서는 전국 철새 도래지 96곳에 150명 내외의 인력이 동원된다. 농식품부 방역 인력 54명을 포함, 환경과학원과 지방청 등을 포함한 숫자다. 반면 야생 멧돼지 수렵을 위해선 환경과학원이 수렵 단체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15명 안팎의 조사단을 꾸려 예찰을 벌이고 있다. AI 조사 인력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멧돼지의 분변이나 감염 매개체가 될 수 있는 다른 야생 동물을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이에 대한 조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 의원은 ASF의 방역 수준을 AI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방한계선에 가까운 비무장지대(DMZ)에서 ASF 바이러스를 보유한 멧돼지 사체가 발견된 만큼 야생 멧돼지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해마다 발생해 온 AI를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이 야생에서 분변을 채취해 바이러스를 검출하는 작업에서 시작됐다고 봤다. 분변에서의 바이러스를 검출한 후 숙주를 확인해 야생 철새, 사육 오리, 산란계, 육계 등으로의 확산 경로를 파악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서해안 주변에선 오리를 기르지 못하도록 하는 ‘오리사육제한제도’를 통해 바이러스의 숙주로 작용했던 사육 오리를 집중 관리한 것이 민감한 대응을 가능하게 했다고 김 의원은 분석했다.
김 의원은 “ASF 방역 과정에선 분변 채취와 같은 기초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바이러스 검출을 위한 검사 작업을 진행하고 야생 멧돼지 사체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십만 마리의 야생 멧돼지를 사냥하고 ASF 바이러스의 90% 이상을 야생에서 검출하고 있는 유럽 사례를 연구해야 한다”며 “강물·강변 모래· 진흙, 진드기·쇠파리·모기와 같은 곤충, 조류·고양이·들쥐 등 들짐승, 그리고 멧돼지 분뇨까지 조사해 야생에서 더 많은 바이러스를 검출해 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광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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