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
신달자 시인의 열다섯 번째 시집이다. 시의 언어로 일상을 살아내는 시인이, 시에 대한 간절함으로 생을 반추한다. 그 70편의 시를 묶었다. 시인은 감정에 휘둘리던 젊은 날에 대한 후회를 고백한다. 그러나 나이 듦이 감정을 무디게 하지는 않는다. “마음과 나이의 거리가 만들어 내는 또 하나의 아픔”이 있을 뿐이다. 이제 시인은 감정을 조금은 다른 온도로 느낀다. 감정에 휘둘려 소리 내어 우는 대신, 하늘을, 강물을, ‘너’를 바라본다. ‘나’를 돌아본다. 바라봄이 곧 울음임을 알기 때문이다. 바라보는 시선의 끝에 시가 흐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시선의 다른 이름은 간절함이다. 민음사, 128쪽, 1만원 

◇남중
문학평론가 하응백의 연작소설이다. ‘김벽선 여사 한평생’ ‘하영감의 신나는 한평생’ ‘남중’이라는 각각의 소설이 모여 하나의 연작소설을 구성하는 형식이다. ‘김벽선 여사 한평생’은 1929년생 여인의 한 평생이 담겼다. 6.25 때 결혼한 남편이 전사하고, 이후 한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삶을 마감하기까지의 이야기다. ‘하영감의 신나는 한평생’은 1899년생 북한 신의주 출신 한 남자가 월남하며 여러 여인을 만나 살다간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이다. ‘남중’은 김벽선여사와 하영감의 아들이 문학평론가가 되어, 문학활동을 하면서 겪었던 여러 일들이 펼쳐진다.
휴먼북스, 176쪽, 1만2500원

◇하루
박노해 시인의 20여년에 걸쳐 기록해온 유랑노트다. 그 첫 번째 시리즈가 ‘하루’다. 2014년 펴낸 ‘다른 길’ 이후 5년 만의 신간이다. ‘하루’라는 평범하고도 경이로운 제목 아래 티베트, 볼리비아, 파키스탄, 인디아, 페루, 에티오피아 등 전 세계 11개 나라에서 시인이 마주한 다양한 하루가 37점의 흑백사진과 이야기로 펼쳐진다. 박 시인은 “참으로 평범하고도 경이롭고, 흔하고도 무서운 말이 ‘하루’”라며 “내가 나 자신의 하루를 살지 않는다면 무언가 내 하루를 앗아가고 만다. 내가 나 자신을 연구하지 않는다면 누군가 나를 연구해 써먹어 간다”고 말했다. 박노해가 찍은 37점의 흑백사진에 영문 동시를 수록하고 단국대 안선재 석좌교수가 옮겼다. 느린걸음, 136쪽, 1만8000원

◇맨해튼의 반딧불이 
손보미의 소설집이다. 잃어버린 7시를 찾아주는 탐정부터 고양이 도둑, 불행 수집가 등의 인물이 등장하는 20편의 짧은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 속 이야기의 번외편인 ‘고양이 도둑’과 ‘빵과 코트’, 단편소설 ‘임시교사’의 씨앗이 된 이야기 ‘허리케인’ 등 고전 작품을 이어 쓴 이야기, 저자의 단편과 장편 소설의 씨앗이 된 이야기도 수록돼 다채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보라의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22컷의 그림이 짧은 소설과 어우러지며 상상력을 더했다. 마음산책, 240쪽, 6800원

◇내일 말할 진실
청소년문학의 외연을 넓혀온 정은숙 작가의 7편의 단편을 엮은 소설집이다. 친구와의 우정, 진로 문제 등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고민부터 스쿨 미투, 가족의 상실, 학교 폭력,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문제와 같이 묵직하고 첨예한 주제까지 폭넓게 그린다. 거짓과 불의 앞에서 진실을 찾아 헤매는 청소년 주인공들의 힘 있는 목소리가 생생하게 울려 퍼지고, 고통 속에서도 성장의 의미를 발견해 내는 작가의 시선과 재기 넘치는 문장이 빛을 발한다. 2010년대 한국 사회를 치열하게 통과해 온 작가의 시대 의식이 편편이 배어 있다. 창비, 236쪽, 1만2000원

◇예순여섯 명의 한기씨
이만교의 네번째 장편소설. 2009년 1월 20일, 부당한 재개발 보상 정책에 반발하던 용산4구역 철거민들을 무장한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화재로 6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있었다. 이 소설은 그 ‘용산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사건의 한가운데로 ‘임한기’라는 가공의 인물을 들여보내면서 진행된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한기씨’가 왜 재개발 철거 현장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를 잃어야 했는지, 그에 대해 회고하는 인터뷰이 66명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우리가 잊었거나 애써 잊고자 했던 ‘그날’의 진실을 파헤친다. 문학동네, 204쪽, 1만2000원.

◇정오의 사이렌이 울릴 때
2020년은 작가 이상(1910~1937)이 태어난 지 110년째 되는 해다. 이상은 전위적이고 해체적인 글쓰기로 한국 모더니즘 문학사를 개척했다. 여섯 명의 소설가(이승우, 강영숙, 김태용, 최제훈, 박솔뫼, 임현)가 새롭게 시도한 ‘날개’ 이어쓰기를 통해 이 작품의 현재적 의미를 다시금 곱씹어본다. 8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그 감동을 고스란히 잇는 여섯 편의 작품들은 독자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아로새겨져 있을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라는 마지막 문장처럼, 또 다른 이야기로 우리 앞에 ‘다시’ 날개를 펼치며 되살아난다. 문학과지성사, 172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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