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테오의 수명> 출처 = 구글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낮’은 빛이 스며 들어오는 창문의 크기만큼 공간에 떨어집니다. 어둠이 화면 전체를 짜임새 있게 누릅니다.
‘낮과 밤의 경계’이자 ‘이름 지을 수 없는 장소’군요. 밤도 낮도 아닌 때, 어둠을 밀고 간 빛은 한 사람의 이마와 움푹 팬 두 눈에 닿았습니다. 그의 손가락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요? 아님 재요?”
타인인지 자신인지를 모르게 어정쩡하게 가르치고 있는 손가락 끝에는 열심히 돈을 세고 있는 젊은 청년이 있습니다. 청년은 돈 외에는 관심 없어 보입니다. 부옇게 흐린 유리창과 무늬 없는 벽을 가로지르는 빛은 돈을 세고 있는 한 무리의 남자들을 따라가다 그들의 시선이 이끈 맞은 편 손가락을 클로즈업합니다.
깊은 어둠 속에서 후광(nimbus)을 두른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나를 좇으라” 순간, 화면 속 강렬하고 긴장된 에너지와 절도 있는 액션은 무대 위 연기자들의 공연을 보는 것 같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에서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신 손가락으로, 카라바조의 <성 마태오의 소명>에서는 예수님이 세리였던 마태를 부르고 계십니다. 마태의 본래 이름은 ‘레위 Levi’ 였습니다.
그는 세금 징수원이었고 로마가 부과한 일정한 세금 외에도 이러저러한 명목의 세금을 악착같이 더 받아내어 사람들의 비난을 샀습니다. 돈과 돈에 의한 권력이 있었지만 사람들로부터 소외되는 불행한 삶이었습니다.
마태는 “나를 좇으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함으로 어둠의 세리에서 예수님 빛의 제자 12사도 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20여년 후에 새로운 약속의 첫 장 ‘마태복음’을 썼습니다. 그는 칼에 찔려 순교합니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da Caravaggio 1573~1610)의 <성 마태오의 소명>입니다. 강렬한 명암대비와 풍부한 질감, 찬란한 빛과 색이 특징이었던 바로크시대를 연 화가입니다.
그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흑사병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고 어렵고 고단한 유년 시절을 보냅니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성정이 급하고 난폭했으며 독단적이었습니다.
게다가 보호와 도움이 부족한 생활환경은 평온하고 일상적인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했지요. 잦은 폭행, 패싸움, 도박, 급기야 살인에 이르는 많은 사고로 삶은 얼룩졌습니다. 무수한 어둠이 그의 팔과 다리를 결박했고 대체로 속절없이 주저앉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신에게 너무 가까웠던 성직자들이 미처 돌보지 못한 가난한 비렁뱅이와 무지한 창녀와 소외된 사람들의 기도를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붓을 잡은 그의 손에서 난해한 성경 구절은 눈에 보이는 생생한 현장으로 되살아났고, 빛과 색에서 인간의 삶을 안타까워하는 신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자유분방하고 미적 안목이 뛰어났던 프란체스코 델 몬테 추기경은 그의 재능을 아껴 거룩함과 천박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그의 예술을 지원했습니다.
그가 창조한 사람들은 강하고 뚜렷하고 남루하고 초췌하고 범속하고 신성했습니다. 매춘부의 얼굴이 성모의 모델이 되었고 창에 찔린 예수님의 상처는 기어이 손가락으로 확인했으며 밭고랑 같은 주름과 새까만 발바닥을 가진 제자들이 화면을 걸어 다녔습니다.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찬미했고 맹렬하게 비난했습니다. 카라바조는 살인을 하고 도망 다니다 그의 그림 속, 어딘가에 도덕이 간섭하지 않는 땅에서 죽었습니다. 300여년이 지난 후에야 오랜 시간 묻혀있던 그는 병든 바쿠스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부활했습니다. 신이 그를 기억했던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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