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30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의 경제부처에 대한 내년도 예산안 부별심사에서 전날 파행된 전체회의의 책임 여부를 놓고 초반부터 공방을 벌였다.
513조원 규모의 내년도 ‘슈퍼 예산안’ 심사를 진행 중인 예결위는 전날 정부를 상대로 종합정책질의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여야 교섭단체 3당 간사가 개의를 둘러싼 문제를 두고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회의는 끝내 열리지 못했다.
자유한국당의 자체 경제비전 ‘민부론’(民富論)을 조목조목 반박한 더불어민주당의 ‘민부론 팩트체크’를 기획재정부가 작성했다는 논란과 경찰청이 전 직원에게 민주당의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의 검찰개혁 보고서 일독을 권했다는 논란에 대해 보수야당이 관련 부처에 사과를 요구하면서다.
여야는 이날 가까스로 재개된 전체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놓고 시작부터 강하게 충돌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회의 파행의 책임을 물으며 한국당 소속인 김재원 위원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반면 한국당은 논란이 된 문제에 대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민갑룡 경찰청장이 여전히 사과하지 않고 있다며 반드시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
심재권 민주당 의원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어제 회의가 열리지 않은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지금 나라 안팎의 형편이 얼마나 어렵냐. 국무총리를 비롯해 거의 모든 부서의 책임자들이 국회에 와서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그렇게 시간을 보내도록 해서야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만약 (논란이 된 문제에 대한) 의견들이 있다면 위원장께서 회의를 주재하면서 각 당의 간사들에게 협의하라고 했어야 한다”며 “위원장께서는 우리 위원들은 물론 행정부의 모든 분들에게 사과의 뜻을 표해주시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조치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김재원 위원장은 “일부 공무원의 일탈 행위로 어제 여야 간 조금 논란이 있었고, 사과를 하기로 정해진 것으로 안다”며 “그런데 그런 식으로 제가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저는 사과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심 의원의 요구를 거부했다.
이에 심 의원이 반발하자 한국당 간사인 이종배 의원은 “많은 야당 의원들이 홍남기 부총리에게 사과를 요구했음에도 아직까지 답변하지 않고 있다”며 “또 경찰청장에게 사죄하고 사퇴까지 하도록 요구했음에도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에 우리 당과 바른미래당은 관련 기관장의 사과 없이는 회의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이와 관련해 3당 간사 간 협의가 지연됨에 따라 어제 회의가 부득이 진행되지 못한 것”이라며 위원장의 사과가 아닌 두 기관장의 사과를 촉구했다.
반면 민주당 간사인 전해철 의원은 “어제 국무위원들이 하루 종일 의미 없이 자리를 지키고 각 부처에서 일을 못하게 된 것에 대해 저는 굉장히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부처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 때 회의는 회의대로 진행하고 간사 간 합의는 합의대로 진행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결위 소속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도 공방이 오갔다.
기동민 민주당 의원은 “정치권 내부 논리로 국무위원들을 다 불러놓고 종합질의를 하루 까먹는 것이 과연 납득할 만한 일이냐”며 “이유야 어쨌든 그런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위원장께서 국민 여러분께 책임있는 한 말씀을 해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반면 이현재 한국당 의원은 “어떻게 공직자들이 일부 이탈을 하느냐. 어제 파행은 정부에서도 성의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며 “위원장께서도 파행이 마치 (예결위) 위원들의 책임인양 호도되는 일이 없도록 정부에 강력하게 촉구해달라”고 요구했다.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강훈식 민주당 의원은 “예결위에서는 예산과 관련된 문제를 중점적으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예결위에서 다른 상임위의 사과 요구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해하지 못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여야의 공방이 지속되자 바른미래당 간사인 지상욱 의원이 중재에 나섰다. 지 의원은 “기재부와 경찰청의 진정성 있는 입장 표명과 사과가 전제가 됐기 때문에 오늘 예결위가 다시 열리게 된 것”이라며 “이 정도로 서로 이해하고 넘어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