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산대 지역협력지원센터장 산업경영학과 교수 박형근
신안산대 지역협력지원센터장 산업경영학과 교수 박형근

살다보면 가끔 이유도 없이 우울할 때가 있다. 특히 40대에 우울함을 더욱 많이 느끼게 된다.
40대가 되면 회사에서 대화할 마땅한 상대가 없다. 위의 상관들은 이미 지체 높은 간부들이라 다가서기 힘들고, 부하들은 중간부가 된 40대에게 거리감을 둔다.
가정생활은 어떤가?
귀가하면 각자 따로따로다. 아이들은 이제 아빠와 놀지 않고 자기들끼리 어울린다.
아내는 아이들 얘기가 대화의 주제다. 그럴 때 특별한 이유도 없이 우울함을 느끼게 된다. 우울함을 느낀다는 것은 해결하지 못한 불쾌한 감정이 있다는 표시다.
따라서 우울하다는 것은 균형 있는 감정을 유지하는 데에 꼭 필요하기도 한다.
우울함을 느낄 때는 활동을 잠시 멈추는 것이 좋다.
우울한 상태에서 빨리 빠져나오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바로 이럴 때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나 자신을 찾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울할 때 자신을 외부세계와 고립시키고 혼자 있고 싶어 한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을 혼자 있다 보면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무기력증에 빠지게 된다.
차이코프스키는 젊어서부터 우울증에 빠져 평생 시달렸지만 음악으로 완화하려고 노력했다.
20대 후반부터 우울증이 더욱 심해진 차이코프스키는 26세 때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로 갈 무렵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를 잠식하는 우울증은 지독하구나. 나는 어젯밤 혼자서 10번이나 울었다”고 썼다.
이런 아픔을 겪은 후에 쓴 곡이 ‘우울한 세레나데’였다고 한다.
이 곡은 협주곡 형태로서 오케스트라 반주를 동반한 독주용 소품이다.
차이코프스키는 세레나데 앞에 우울하다는 뜻을 가진 ‘멜랑콜리’를 붙였는데, 말 그대로 처음부터 우울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선율을 들려준다.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의 우울함을 받아들였다. 아름다운 선율로 우울함을 표현하면서 따뜻하게 감싸 안기도 했다. 우울한 기분에 빠진 사람은 자기비하로 인해 사기가 땅에 떨어지기 쉽다.
 이럴 때 차이코프스키처럼 우울증을 이해하고 감싸 안으면서 한편으로는 벗어나고자 했던 이 음악을 들으면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초조함에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40대에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고 부럽지 않는 지위에 있을지라도 매우 복잡 미묘한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이 계속할 수 있을까?’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될까?’
‘지금처럼 계속 살아가도 후회하지 않을까?’
‘10대에 내버려 둔 것을 돌아보지 않아도 될까?’
이런 고민 속에 공연히 초조함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40대에 작은 성공을 거두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계속된다는 보장도 없고, 또 미래의 행복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40대의 정체이다.
그리하여 초조함을 느끼게 된다.
이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안위를 위협하여 초조하게 만드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질병, 생계, 노화 등으로 인한 불안은 현대 사회의 특징 중의 하나로 꼽힌다. 불안은 우리를 조급하게 만들고 초조하게 한다.
그러나 조급해진다고 이런 문제들이 금방 해결되지 않는다. 모두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고 상당한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다. 이럴 때 필요한 말이 ‘인내심’이다.
음악가 중에는 엄청난 인내심으로 조급함을 이겨낸 이들이 많다.
중요한 점은 이런 음악가들이 무작정 인내하고 기다리기만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리스 라벨은 손가락 마비와 자동차 사고로 인한 뇌손상을 입어서 친구에게 간단한 조문을 보내는데도 무려 8일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도 굉장한 인내심으로 작곡을 하였다.
모리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은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파올 비트겐슈타인이 제1차 대전에서 오른 팔을 잃게 되자 라벨에게 남은 왼손을 위한 피아노곡을 작곡해달라고 의뢰했다.
왼손으로만 피아노를 칠 수 있는 곡을 만들어달라고 한 것이다.
라벨은 이 피아노 협주곡을 통해서 왼손이라는 제약을 오히려 창작력을 고도로 집약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왼손을 위한 협주곡’은 약 20분 길이의 단악장으로, 3부분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음악을 듣고 나면 왼손뿐이라는 장애도, 변함없이 짓누르고 있는 현실의 무게도 모두 한바탕 소리의 축제 속에서 아름다운 노래로 승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 곡의 중간 부분에서 모든 악기와 함께 아울러 신나게 춤을 춘다.
그런 신명 속에서 왼손만으로 피아노 치는 것을 금방 잊어버리는 것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때 어느 새 초조함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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