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하운 (김포 사우고 2학년)
권하운 (김포 사우고 2학년)

태어날 때부터 자라온 우리 집은 동네에서 가장 큰 사거리가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덕분에 유세 기간이 되면 사거리 가장 큰 건물에 붙은 창문 네댓 개 길이를 가릴 정도의 큰 현수막과 2~3년 전의 히트곡을 개사한 노래에 맞춰 춤추는 선캡 모자 군단을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는 취미를 가질 수 있었다.
선거하는 날이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어 좋았고 그날 저녁 TV 화면 밑에서 색색의 그래프가 위아래로 올록볼록 거리는 것이 그저 거슬리기만 했던 어린 시절, 선거라는 것은 몇 뼘 안 되는 거리에 있으면서도 몇 십 년 후에나 가까워질 머나먼 어른들의 세계로만 보였다.
몇 년 지난 것 같지도 않지만 당시엔 고등학생이면 마냥 어른 같아 보였는데 열여덟 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선거라는 건 마냥 어른들의 일같이 어렵고 무거워 보이기만 한다.
일 년 반 뒤면 벌써 스무 살. 정치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도 알게 될 기회조차 없었는데 벌써 한 사람을 ‘골라 낸다’라는 막중한 권한이 내게도 부여될 것이다.
중학생 때 참여했던 학교 선거의 선거관리위원회 개표원 활동은 중학생의 거침없는 심리만큼이나 특이한 무효표들을 볼 수 있었다.
모든 후보자 위에 도장을 찍어 주는가 하면 언제 가져왔는지 모를 볼펜이나 캐릭터 도장을 찍어놓는 등 당시 골라낸 48장의 무효표들은 장난기 가득한 낙서들로 보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전교 부회장과 3등은 서른 표 언저리 차로 승패가 갈렸다는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는 나도 후보로 나간 내 이름을 쓰고 싶지도,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더더욱 없어서 후보로 나온 모든 사람의 이름을 썼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나는 두 표 차이로 낙선했다. 나와 같이 그 48표 언저리의 무효표같이 ‘나 하나가 뭐라고’와 같은 겸손을 가장한 책임 회피로 자신의 자유를 무시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아예 무시해버리는 것이 진지하게 누구를 선택할지 걱정하고 고민하는 것보다는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이런 ‘나 한 표쯤이야’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아주 많다는 것이다. 특히, 매년 젊은 세대의 투표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지는 걸 보면 젊은이 가운데 이런 이들이 많은 것 같다.
무효표를 선택한 혹은 투표를 포기한 사람들의 이유는 충분히 많을 것이다. 바빠서, 싫어서, 잊어서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우리의 한 표가 그런 이유로 아무런 의미 없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나는 조금은 부담이 되더라도 어차피 소용없을 거라 생각되더라도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는, 선택해 본 어른이고 싶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첫 선거, 내 생애 최초로 내가 선택한 첫 사람의 이름에 도장을 찍어 주며 설렜던 그 마음일 수는 없을 테지만, 적어도 내 인생과 미래를 위해 단순히 후보의 이름이 아닌 내 앞날의 방향에 점 복(卜)자를 찍어 주겠다는 마음으로 투표소에 갈 수 있게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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