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와 방아깨비] 출처 = 구글
[양귀비와 도마뱀] 출처 = 구글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여자를 꽃에 비유하는 것을 두고 콩팔칠팔, 소리가 요란하였습니다. ‘성인지 감수성’에 민감한 요즘 시대에 비난받기 딱 알맞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해어화(解語花)란 표현의 배경을 떼어버리고 단어 그 자체로만 본다면 고아(高雅)하고 낭만적 비유의 최고봉이 아니겠느냐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장미꽃이든 나팔꽃이든 아니면 길가 소국(小菊)일지라도 꽃이란 아름다운 것임에 틀림없다는, 시대에 미끄러지고 있는 오래된 이로서의 안타까운 웅변이었지요. 나이만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청춘이 일갈했습니다. “꽃이라고 해서가 아니라 꽃처럼 있기를 바라서 문제입니다.”

 성리학과 사대부의 나라, 조선에서 꽃으로 있지 않고 ‘워킹 맘’으로 살고자 했던 고아하고 낭만적이며 동시에 늠름했던 여인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의 초충도(草蟲圖)입니다. 초충도는 남송시대(1127~1279)부터 그려졌다고 하고 우리나라는 12세기 전반 고려청자의 문양에 나타납니다. 일년초나 다년 생의 풀과 꽃들, 그 주변의 작은 곤충류들이 주인공입니다. 화려하지 않은 자연의 모습을 담고자 하는 문인들과 다정하고 친절한 시력을 가진 일반 화가들이 계층에 상관없이 폭넓게 다루었습니다. 또 풀과 벌레와 양서류 등이 각각의 의미를 지녀 그림은 축수와 기원과 희망을 건네주는 선물로도 많이 활용되었습니다.
신사임당의 작품 중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초충도는 10첩 병풍입니다. 8폭은 그림이며 2폭은 신경(申暻 1696~1766)과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의 발문이 있습니다.

  그림을 볼까요? <가지와 방아개비>는 득남과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그림입니다. 가지는 한자로 ‘가자 茄子’라고 읽습니다. 이는 자식을 많이 낳는다는 ‘가자 加子’와 의미가 통합니다. 게다가 가지의 모양은 흡사 남성의 상징과 닮아 있습니다. 또 한꺼번에 알을 99개 낳는다고 하여 후손의 번성을 기원하는 방아개비도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이래저래 득남을 비유하지요. 서양 중세의 이콘화처럼 사물마다 상징하는 의미체계가 있는 것이지요.

  <양귀비와 도마뱀>은 어떤가요? 양귀비는 꼿꼿하게 등을 폈습니다. 오만해 보일 정도로 압도하는 기세가 있군요. 당당한 품새에 오른쪽 씨방은 줄기가 휘도록 묵직해 보입니다. 자식을 많이 낳아 번성하라는 뜻이겠지요. 꽃 주변엔 흰색 나비가 활짝 날아다닙니다. 나비는 나비 접(蝶)자의 발음이 중국어의 팔십 노인 질(耋)자의 ‘띠에’하는 발음과 같아 장수를 상징하며, 날개를 접고 펼치는 날개 짓은 부부간의 금슬을 은밀히 은유합니다. 또 마디가 대나무를 닮고 늙어서도 허리를 굽히지 않아 ‘석죽화(石竹花)라 불리며 젊음을 상징하는 패랭이꽃도 보입니다. 웅크리고 있는 오른쪽 장수하늘소는 딱딱한 껍질에 둘러싸여 갑충(甲蟲)이라 불리는데 ‘갑’은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맞은편 도마뱀은 꼬리를 잘라도 다시 생기는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 사대부에서 용 대신 사용했지요. 결국 부부간의 좋은 금슬로 오래도록 젊고, 자식들은 장원급제하여 후손을 많이 낳고 살라는 축수(祝壽)를 담은 것입니다.

  섬세하고 선명한 필선과 다채로운 색채, 안정적 구도, 벌레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고 풀포기가 향기로웠다는 그녀의 그림은 우리의 기억 속에 물을 뿌린 듯 희미해졌습니다. 대신 현모양처의 이미지, ‘율곡 이이를 학자로서 키워낸 어머니’의 모습이 남았지요.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 때마다 소환되었고 아직도 역사적 소임이 남아있는 듯한 그녀에게 인터뷰를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나만의 방식으로 우리나라의 산수(山水)를 그리고 싶습니다. 자연의 작은 숨소리, 미세한 떨림이 주는 오묘함을 기록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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