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평생 그는 이 세계의 변두리에서 서성 거렸습니다. 대중의 열망과 비평가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심한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지 못했고 우울증, 신경쇠약과 싸웠으며 자신의 혁명적 추상화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실현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술을 마신 후 300km의 속도로 허공을 디디듯 저 세계로 넘어갔습니다. 그의 신경은 통제를 벗어나 날카롭고 예민했으며 광폭했습니다. 그의 머리와 손은 디오니소스적인 리듬과 감각이 지배했지요. 캔버스 위에서 해석하기보다 캔버스와 더불어 느끼기를 바랐던 화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의 작품 <Nomber 5>를 소개합니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우주를 유영하고 있는 것 같지 않으세요? 광대하고 무한한 힘과 자유가 느껴집니다. 어느 한 곳도 더 드러나거나 소외되지 않는 평등한 평면, 전체가 중심인 상태의 경계도 형상도 구성도 없으며 전통적인 원근법도 무시한 새로운 회화입니다. 올 오버 페인팅(all over painting)이라는 용어가 탄생한 순간이지요. 폴록은 이젤 위에 있던 관습적인 캔버스를 버리고 화면을 넓고 평평한 바닥에 깔아 놓았습니다. 마치 신이 광대한 우주 한 가운데 서서 빛이 있어라라고 말하듯 그는 펼쳐놓은 화폭 위를 걸어 다니며 공업용 페인트를 흩뿌렸습니다. 색과 색이, 선과 선이 교차하며 상상을 뛰어넘는 황홀한 면()이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페인트가 떨어지고 부딪치며 생성하는 새로운 세상은 그의 강렬한 실험과 호기심이 창조한 것이지요. 직관과 몸의 언어가 잉태한 작품들은 현대 미술의 추상성을 대표하게 되었습니다. 추상 표현주의의 선두일 뿐만 아니라, 그의 관습이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회화적 행위,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은 회화 제작의 과정과 행위만으로도 충분히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개념미술의 장르를 열었다고 평가합니다.

그의 놀라운 성과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1,2차 세계대전 후, 힘에 부치는 전쟁을 수행했던 유럽은 가난하고 심약해졌습니다. 유럽의 심장은 졸아붙었습니다. 화가들은 기존의 회화 전통에 대항하는 다다이즘과 입체주의, 신조형주의, 구축주의, 미래주의 등 아방가르드적 모더니즘을 이끌었지만 졸아붙은 심장으로는 찬란한 시대가 요구하는 에너지를 펌프질하기 어려웠습니다. 유럽의 명성들은 서둘러 미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당시 미국은 세계의 패권을 거머쥐었거든요. 권력은 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량생산시스템과 절대적 자본에서 나오니까요. 물적인 기반은 미국의 머리에 새 시대의 왕관을 씌우고도 남았지만 왕관에는 정통성과 권위가 필요했습니다.

미국은 가장 미국다운 이미지를 원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렸던 탁월하고 창조적인 예술가들은 유럽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잭슨 폴록은 미국인이었지요. 게다가 담배를 물고 성스럽게 여겨졌던 캔버스를 발로 밟으며 종횡무진 페인트를 뿌려댔습니다. 미국의 개척정신과 남자다움의 문화적 요약본이라고 해야 할까요? 폴락은 액션페인팅이라는 미국적 언어로 새로운 미술사를 기록했습니다. 콜렉터였던 페기 구겐하임과 미술 비평가였던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회화의 정체성인 평면성과 비재현성을 구현한 그를 미국의 예술적 영웅으로 부상시켰습니다. 하지만 문화를 자본으로 소비하는 세상의 노련한 요구와 따가운 시선을 막아줄 캡틴아메리카의 방패가 없었나봅니다. 그는 44살이라는 아쉬운 시간만을 우리와 함께 했습니다. 그가 남긴 언어를 다시 한 번 음미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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