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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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손톱으로 튕기면 금이 갈 듯, 파리하고 냉기가 도는 태양이 히말라야 지붕 사이로 떠오릅니다. 늙은 우주 안에 숨 쉬는 앳되지만 도도한 지구의 얼굴입니다. 손등으로 햇빛을 가리듯 지구는 분출하는 우주의 에너지를 웅장한 히말라야로 받았습니다. 저 파리한 얼굴에 생기가 돌면 생명들이 움트고 자라나고 열매 맺고 순환할 것입니다. 바다에는 사자가 헤엄치고 산 속엔 고래가 뛰어다니는 신비 가득한 땅에 인간들은 두 다리로 굳건히 서서 새 해, 새 아침과 악수할 것입니다. 2020년을 맞는 한 주, 푸르고 검은 산맥이 연달아 엎드려 태양을 맞고 있는 니콜라스 뢰리히(Nikolai Konstantionovich Rerikh, 1874~1947)<히말라야의 일출>을 소개합니다.

 

아직 신의 음성이 귓전에 들리던 때, 인간의 피부는 얇았고, 손발은 부드러웠습니다. 나약한 인간에게 이 세계는 두텁고 견고한 신의 의지였지요. 어제 남은 빛들이 늑대 굴속으로, 왜가리가 잠드는 갈대 숲 사이로 들어가면 인간들은 옷깃과 옷깃 사이에 빛을 숨겨 놓았습니다. 깊음이 흘러내리듯 어둠이 왔고, 한 꺼풀의 옷을 벗을 때마다, 쏟아져 나온 여리고 순한 빛들이 천사를 불러 모았지요. 날개달린 전령들이 전해주는 아득한 곳의 이야기와 숲의 정령이 들려주는 생명의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로 반딧불처럼 깜박였습니다. 몰래 출생의 비밀을 엿들은 달은 꿀꺽 이야기를 삼켰고,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나신(裸身)의 사람들은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별을 바라보았습니다. 내일, 다시 붉은 태양이 뜨리라는 걸 믿으면서요. 검푸른 산맥이 연이어 달려 시간은 우리를 2020년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21세기의 태양은 고대의 태양과 다를까요? 여전히 우리의 옷깃엔 빛과 비밀스런 위대함이 숨겨 있을까요?

 

니콜라스 뢰리히는 러시아 피터스버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콘스탄틴 페도로비치(Konstantin Fedorovich)는 도시의 유명한 공증인이었고 어린 뢰리히에게 회화, 역사, 고고학과 동양 문화를 접하게 했습니다. 그의 유년시절은 수량이 풍부한 강줄기에 기대어 사는 순박한 농부와 같았습니다. 학생시절에 이미 고고학 모임의 일원이었던 그는 1893, Karl May 체육관을 졸업하고 이후 Imperial Academy of Arts의 법학 부분을 지도하면서도 발굴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압력과 시간이 만드는 전통의 무게에 큰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지요. 또한 평생의 친구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던 아내 엘레나 이바노브나와 함께 40여 개의 러시아 고대 유적도시를 방문하지요. 여행은 그에게 러시아의 시원(始原)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키웠으나 당시 조국은 볼세비키 혁명이라는 역사의 지각변동을 겪는 중이었습니다. 이데올로기 보다 슬라브 문화를 아끼고 지키려는 순수 예술인이었던 그는 핀란드로 이주합니다.

 

신학적 신비주의에 매료된 니콜라스는 핀란드에서 런던으로 런던에서 미국으로 움직이며 아그니 요가 Agni Yoga’를 설립하기도 했고, 1928년에는 인도에 정착해 히말라야 연구소를 창설 했습니다. 그는 러시아에서 42여 년, 인도에서 20여 년, 미국에서 3년여를 보내며 예술적이고 과학적인 탐험을 쉬지 않았고, 문화재 보호를 위한 국제 협약 Roerich Pact의 승인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는 <빛의 힘>에서 진리는 계산으로 알려지지 않으며 심장의 언어만이 깊은 진리가 사는 곳을 안다는 말을 남겼지요. 니콜라스 뢰리히는 현미경으로 지구를 들여다보는 고고학자였고, 펜으로 심박 수를 세는 작가였으며, 물감으로 머릿속을 그리는 화가였습니다. ‘인도의 위대한 러시아 친구였으며, 이 세상과 하늘 사이에 영적인 사다리를 놓고 싶어 하는 건축가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의 그림에서 20 포인트 고딕체 성경을 읽는 묵직하고 경건한 수도사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귀 기울여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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