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사람과 가까이 사는 동물 중에 개와 고양이가 있다. 그들은 인간과 가까이 살지만 상극관계다. 개와 고양이가 같은 공간에서 마주치면 물고 뜯고 싸운다. 우리정치인들도 개와 고양이 꼴이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 고양이와는 가족처럼 실내에서 함께 지냈다.
안방 이불속에서 고양이와 잠도 자고 때가 되면 밥도 같이 먹었다.
그 땐 개는 방에 얼씬도 못했다. 그래서인지 개와 고양이가 마주치면 물고 뜯고 곧장 싸웠다. 어찌됐건 고양이는 실내서 개는 마당에서 살았다.
개는 천시 받는 동물 중 하나로 주인이 화가 나면 몽둥이로 때리고 걸핏하면 발로 찼다. 그래서 개도 밥 먹을 때는 발로 차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만만한 것이 개였다. 뿐만 아니라 개는 어린아이가 싸놓은 똥이나 사람들이 먹다 버린 음식물을 먹고 살았다. 사람들은 개를 지금처럼 귀히 여기지 않고 홀대했다.
그래선 가 사랑받는 고양이를 보고 개가 시샘을 하며 미워했다.
둘 사이는 상극이었다.
개가 고양이만 보면 덤벼 물고 뜯었다. 그런 고양이와 개의 환경이 어젠가부터 바뀌었다. 고양이가 집밖으로 쫓겨나고 개가 안방을 차지 사람들로부터 귀염을 독차지했다.
세상사 그렇다.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되는 것 순간이다. 인간의 이기주의는 수시로 변한다. 필요에 의해 가졌다 버리는 게 문제시 하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필요할 땐 가까이하고 필요 없으면 언제든 걷어찬다. 고양이 꼴 되는 것 순간이다.
국민들! 정당은 물론 정치인에 대한 지지, 마치 고양이를 내팽개치고 개를 좋아하듯 언제든 그렇게 변할 수 있다.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다 눈 밖에 나면 고양이 꼴 된다.
그런데 그걸 몰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천년만년 자기네 세상으로 착각을 해서인지 정치인이 권력 잡으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가관이다.
국민의 뜻 거슬리는 것 안중에도 없다. 우리 근현대사를 보면 고양이 꼴 난 정치인들, 정파, 부지기수다. 고양이 꼴 되고 싶지 않으면 세상 순리대로 정직하게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
과거 중국 청나라 때 있었던 일이다. 청나라가 건국 후 벼슬자리를 놓고 황실의 친인척들이 끊임없이 다투었다.
건륭이 황제가 돼 선대황제에게 좋은 신하가됐던 나쁜 신하가됐던 그것 차치하고 관대와 엄격함을 겸비한 정치를 했다.
건륭제는 어려운 종친들에게 물질적으로는 배려를 하고 연회도 베풀었다.
반면 친형제는 물론 먼 친인척이라도 정치에 간여 몸가짐을 조심하지 않은 경우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과감히 처벌했다.
일예로 건륭이 가장 예뻐하는 동생 홍주가 국민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다.
그것을 전해들은 형 건륭이 엄격하게 다스렸다. 형제 친인척이 백성들에게 조그마한 잘 못이라도 했다가는 용서하지 않았다.
잘 못한 점에 대해 엄격했다. 반면 아무리 미운 신하라도 잘 하려다 실수를 한 그런 경우는 관대히 용서를 했다.
정치지도자들 당파 간에, 계파 간에, 지역 간에, 무조건 앙숙이 돼서는 안 된다. 고양이와 개처럼 서로 앙숙이 돼서는 안 된다. 말로만 협치 해서는 안 된다.
건륭제와 같은 정치지도자가 돼야 한다.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되는 그런 일 없지 않다. 고양이와 개를 타산지석으로 삼기를 진정 바란다.  
 

저작권자 © 경기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