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것을 찾는 것이 본질이죠.”(한태숙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 “국악단의 전체 키워드 중의 하나는 ‘미래’입니다. 특히 바꿀 역(易)이 중요하죠.”(원일 경기도립국악단 예술감독)
‘연극계 파격의 대명사’로 통하는 극단 물리 한태숙 대표와 ‘국악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원일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대취타 및 피리정악 이수자가 경기도문화의전당(GGAC·대표 이우종)의 환골탈태를 돕는다. 


한태숙과 원일은 경기도문화의전당 산하 예술단체인 경기도립극단과 경기도립국악단의 예술감독으로 각각 최근 임명됐다. 
한 감독과 원 감독은 연극계와 국악계의 중심에 있었지만 빤한 길을 걸어오지 않았다.
한 감독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심리적인 연출로 범상치 않은 작품을 선보여왔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을 지낸 원 감독은 국악계의 대표적인 실험주자다.


그간 다소 경직된 것처럼 보였던 경기도문화의전당이 개관 29년 만인 올해 처음 ‘레퍼토리 시즌제’를 도입하면서 두 감독을 초빙, 파격적이고 유연한 작품 구성에 나섰다. 두 사람이 그간 활약해온 서울의 한복판이자 공연계 중심에서 살짝 벗어나 경기도문화의전당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 감독은 4일 소공동 호텔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우종 (경기도문화의전당) 사장님이 당신이 하고 싶은 공연을 다 하라고 미끼를 던지셨다”며 웃었다.
한 연출의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그동안 따뜻한 가족극과 역사극, 세미 뮤지컬 등의 작품을 다뤘던 경기도립극단은 조금 더 무거운 질문과 함께 돌아온다.
극단 골목길의 박근형 연출이 참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폭력을 꼬집는 ‘브라보, 엄사장’(3월 5~15일 경기도문화의전당)으로 시즌의 문을 연다.

 

‘파묻힌 아이’(5월 21~31일 경기도문화의전당)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 배우 겸 극작가 샘 셰퍼드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관해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올해 시즌 특별기획 ‘오네긴’(9월 10~20일 경기도문화의전당)은 러시아 최고권위의 황금마스크상 수상자인 콘스탄틴 보고몰로프가 연출을 맡았다.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의 운문소설을 국내최초로 연극으로 올린다.
11월에는 한 감독과 정복근 작가가 만나, 어쩔 수 없는 운명에 휩쓸려 상처 입은 개인에 대한 연극 ‘저물도록 너, 어디 있었니?’(11월 19~29일 경기도문화의전당)를 선보인다.


한 연출은 “(경기도립극단에서) 그동안 안에 품었던 작품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뒷배가 돼 주신다는 뜻은 예술감독으로서 자율성 보장의 의미라고 알아들었다. 저는 매력적인 작품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살길이다. 개인적인 욕심을 현실적으로 잘 구축하는 것이 당면한 과제”라고 했다.
원 감독을 만난 경기도립국악단은 새로운 음악운동 ‘시나위’ 선언을 통해 올해 시즌을 꾸민다. ‘신(新), 시나위’(3월 12~13일 경기도문화의전당)는 고정된 선율 없이 즉흥적으로 연주되는 공연이다. ‘역(易)의 음향’(4월 17~18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는 전통 장단과 서양음악의 화려한 협업 무대를 선보인다. 


현재 가장 핫한 작곡가인 장영규와 라예송이 국악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들을 ‘21세기 작곡가 시리즈’(9월 11~12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공개한다. 10월9일 한글날을 맞아 한글미디어아트 ‘ㄱ’의 순간‘(10 8~17일 경기도문화의전당)도 공연한다.
원 감독은 “시대가 바뀌어서 한국의 위상이 올라갔고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알고 싶어지면서 우리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면서 “손위의 예술에 대한 흥미가 생기면서 전통이 주목 받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전통 예술계는 국제적 요구에 반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국악관현악의 정체성을 고민해왔다. 경기도립국악단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사정을 알고 있었고 관심 갖고 지켜봤다. 잠재력과 질적 수준을 알고 있음에도 ‘왜 이렇게 브랜딩이 되지 못하나’라는 의문이 있었는데 기회가 왔다. 이제는 드라이브를 걸어도 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역시 경기도문화의전당 산하 단체인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상임지휘자 마시모 자네티와 함께 ‘앤솔러지(anthology)’ 시리즈를 론칭한다. 마시모 자네티와 첼리스트 다니엘 뮐러 쇼트가함께 하는 ‘앤솔러지 시리즈 Ⅰ’(27일 고양아람누리, 28 일 롯데콘서트홀)를 시작으로 이 시리즈를 통해 7개 공연을 선보인다.
특히 ‘앤솔러지 시리즈 Ⅴ’(9월 4~5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는 지휘자 정명훈이 지휘봉을 잡아 눈길을 끈다. 경기필과 정 지휘자가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협연자로 나선다.


경기도립무용단은 김충한 예술감독과 함께 컨템포러리부터 플라스틱드라마까지 다양한 장르를 시도한다. 전통 한국무용에 기승전결이 뚜렷한 각본을 덧입혀 완성한 댄스컬 ‘률律’ (3월 25~28일 경기도문화의전당, 4월18일 성남아트센터) 등이 찾아온다. 특히 특별기획 ‘오네긴’(5월 21~24일 경기도문화의전당)은 러시아 신예연출 세르게이 제믈랸스키가 연출을 맡는다. 비언어극인 플라스틱드라마를 표방한다.
경기도립극단, 경기도립국악단, 경기도립무용단,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경기도 대표 4개 예술단체가 올해 27일부터 12월22일까지 선보이는 작품은 31개다. 총 125회 공연을 펼친다. 
레퍼토리 시즌은 사전에 기획된 공연들을 연초에 미리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것이다. 극장 측에서는 효율적으로 제작 환경을 관리할 수 있고 관객들 입장에서는 관람계획을 세워 공연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더불어 다양하게 마련된 패키지 티켓은 저렴하게 공연을 관람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나라에서는 민간 극장인 LG아트센터가 시즌제 틀을 세웠다. 국공립 극장 중에서는 2012년 국립극장이 시즌제를 도입, 성공적으로 이끌고 오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역시 2016년 시즌제를 도입했다. 
올해 새롭게 관객을 만난다는 뜻에서 키워드로 ‘헬로(Hello)’를 내세운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우종 사장은 “이번 경기도문화의전당의 시즌제가 한국공연 예술의 외연을 확장하고 레퍼토리를 심화하는데 보탬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수원과 수원 등 경기남부지역 300만 시민의 거점 공연장이기도 한 경기도문화의전당은 “3, 40대 관객층도 많은데 저희가 그 분들의 요구에 부흥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레퍼토리 시즌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경기도만의 특색이 있는 작품을 통해 차별화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과 관련 대책 방안에 대해 이 사장은 “처음 시즌제를 준비하는 과정 중에 이중적 어려움이 생겼다”면서 “방역의 의무를 다하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다. 과잉대응이 늦장대응보다 더 낫다. 진인사대천명의 마음으로 이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기를 방역 당국과 함께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지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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