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구글페테르 루벤스 - 삼미신
▲출처 = 구글 페테르 루벤스 - 삼미신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아득한 하늘과 모빌처럼 세워 놓은 동물, 향기로운 꽃 내음이 폴폴 풍기는 전형적인 풍경화 속에 우유로 빚은 듯, 흰 피부를 가진 세 명의 여신이 서 있습니다. 잠자리 날개로 스카프를 만든 게지요? 엉덩이에 얇은 천을 걸치고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여신을 중심으로 왼쪽엔 유난히 앳된 금발의 여신이, 오른쪽엔 조금은 더 성숙해 보이는 여신이 보입니다. 바로크 시대의 대표주자 페테르 루벤스(Peter Paul Ruben, 1577~1640)<삼미신, Three Graces>입니다.

 

그림을 좀 더 자세히 보시겠어요? 루벤스의 삼미신은 모두 후덕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육감적이라고 해야 할까, 살이 접힌 모습이 날씬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등과 팔뚝은 근육질인데다 요즘 기준으로 허리와 아랫배는 훌라후프를 천 번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맑고 흰 피부와, 8등신의 비율로도 커버할 수 없는 살집입니다. 가슴과 가슴이 십리는 떨어져 있다는 비아냥을 들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루벤스의 여인들은 보는 우리를 한없이 행복하게 합니다. 왠지 위로받는 느낌이 들지요. 나도 저 시대에는 미인소리를 듣지 않았을까 싶은 상상을 줍니다. 루벤스가 활약하던 시기의 네덜란드는 풍만한 여인을 선호했습니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야박하지 않았지요. 그들은 풍요로운 경제적 바탕에서 여유롭고 우아한 삶을 추구했고 친절과 미소가 여인의 덕목이었습니다. 그럼 삼미신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삼미신은 카리테스(charites)라고 하는데 미()의 덕목을 의인화한 세 명의 여신이 마주 보거나 어깨에 손을 얹거나 각자 다른 포즈로 서 있는 그림을 말합니다. 이 삼미신(三美神)은 제우스와 바다의 요정 에우리노메 사이의 세 딸입니다. 아름다움과 우아함의 여신인 아글라이아(Aglaia), 기쁨의 여신인 에우프로쉬네(Euphrosyne), 풍요의 여신인 탈리아(Thalia)인데 신화에서 독자적인 의미를 가지기도 하고, 때로는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를 모시는 하위 여신으로서 부가적인 뜻을 나타내기도 하지요. 삼미신은 그리스와 로마를 거쳐 르네상스, 바로크에 이르기까지 상징하는 의미와 위치는 조금씩 달랐습니다. 아마 시대가 당대의 여자들에게 부여하는 미의 덕목이나 기준이 달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 바로크를 대표하는 루벤스 이전의 중세에는 어떤 여인을 아름답다고 했을까요? 중세의 아름다움에는 신의 허락이 필요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것을 창조한 신은 몹시 피로해 자연 이외의 것은 인간에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피조물인 인간이 감히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논할 순 없었지요. 지친 신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째깍째깍 움직이던 시계가 14~16세기를 알렸습니다. 그리스, 로마의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르네상스였지요. 이 시기의 삼미신은 순결, 사랑, 아름다움을 의미했습니다. 화가들은 9등신에 가까운 완벽한 비율, 바짝 솟은 엉덩이와 길고 곧은 다리, 부드럽게 휘어진 허리를 가진 여인을 성경과 신화의 인물로 재현했습니다. 현대의 미스 유니버스에 나가도 World Queen은 문제없었을 거예요. 다만 미의 기준에 순결이 들어간 점으로 보아 사회적 규범이 강조되기 시작했다고 유추하면 무리일까요?

 

19세기, 드디어 호기심으로 눈이 반짝이는 여인들이 등장하지요. 양산으로도, 부채로도 가려지지 않는 생명력 넘치는 그녀들은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녀들이 입었던 길고 주름진 치마는 20세기에 들어 현대라는 가위를 든 샤넬이 무릎길이로 싹뚝 잘라버렸습니다. 긴치마에 갇혀있던 그녀들의 재능이 건강한 두 다리를 드러내고 여성해방을 향해 뛰기 시작했지요. 이제 삼미신은 제 각각의 의미를 독자적으로 획득하기 시작합니다.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며 당당히 말하지요. “난 아름답다.” 당신도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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