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마티스-이카루스
▲앙리 마티스-이카루스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브런치 작가

이런 문장은 어떤가요?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이런 문장은 어떤가요? “나는 행복하다.” 군더더기 없이, 중언부언 없이 깔끔하고 담백하지요. 문장의 수식이 없으니 말의 중심을 향해 곧바로 날아갑니다. 언어는 살과 근육을 발라 뼈만 남길 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담습니다. 단순한 말은 묵직한 울림이 있습니다. 미술에 있어 장식과 액세서리를 모두 제거하고 이라는 뼈만 남겨 미술사에 형광으로 방점을 찍은 화가를 소개합니다. 색에게 자유를 선물한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입니다. 그를 흔히 야수파(fauvisme)의 대표라고 말하지요. 야수파에 대한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만 대체로 1905, 살롱 도톤느(Salon d’Automne)에 전시한 작품을 보고 미술평론가 루이 복셀(Louis Vauxcelles)야수라는 단어를 말한 데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이 전시는 귀스타프 모로의 문하생이었던 마티스, 루오, 마르케 등과 블라맹크, 드랭, 브라크 등이 연합해 참여했습니다. ‘야수라는 말에서 거친, 강렬한, 정돈되지 않은, 파격적인, 광란 등의 느낌을 받게 되지요. 당시 야수파를 형성했던 젊은 작가들은 전통적 위엄으로 격조 있게 지은 미술계라는 저택의 유리창을 빨갛고 파랗고 노랗게 칠해버린 난봉꾼들이었습니다. 마치 엄마의 화장대에서 훔친 립스틱으로 삐뚤빼뚤 입술을 바른 어린아이처럼. 고풍스런 저택에 살고 있던 귀족의 집사들마저 지팡이를 휘두르며 천박하고 몰상식하다 항의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귀족이라는 신분의 완장을 떼었듯이, 야수파들은 형태에 예속되어 있던 색의 자유를 선포했습니다. 기존 하늘은 파랬고, 나뭇잎은 초록이었지만, 야수파의 캔버스 위에서는 은회색 하늘과 보라색 나뭇잎이 등장했습니다. 여인의 얼굴엔 짙은 초록과 연두와 오렌지가 제각각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드러내었습니다. 드디어 색()은 날개를 달고 비상하게 되지요.

 

이제 그림을 보면서 색이 말하는 내밀한 감정이 무엇인지 살펴볼까요? 춤추는 것 같기도 하고 날아오르는 것 같기도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머리는 갸우뚱하고 팔은 활처럼 휘어져 있습니다. 그의 머리는 고민을 담고, 그의 팔은 무언가 행동하려는 몸짓이군요. 검은 육체 안에 붉은 심장이 선명합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노란 빛들과 파란 바탕이 보입니다. 빨갛고 파랗고 노랗고 검은 색들은 제각각 자신을 보아달라고 아우성입니다.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는 그는 누구일까요? 하늘을 향해 날다 태양과 너무 가까이 간 소년 이카로스입니다.

 

밀랍으로 만든 날개는 태양의 뜨거운 열에 녹아 그는 바다로 추락하고 말지요. 신들의 대장장이인 헤파이스토스의 후예이자 그리스 최고의 장인(匠人)인 아버지 다이달로스가 만들어 주었던 날개였답니다. 다이달로스는 너무 높이 날아 태양의 열기에 녹아서도, 너무 낮게 날아 바다의 습기에 젖어서도 안 된다고 당부했지요. 하지만 이카로스는 보고 싶었답니다. 찬란한 빛은 어디서 태어나는지, 그 황홀한 눈부심은 무엇 때문인지. 그는 아버지의 당부가 떠올랐지만 호기심과 위로 오르려는 욕망을 거역하지 못했습니다. 퍼덕이던 그의 날개는 노랗게 노랗게 부서져 바다에 떨어졌습니다. 그를 안쓰럽게 여긴 바다는 그가 보았던 태양을 그의 검은 육체 안에 넣어주었습니다. 저 심해의 어디쯤, 아직 그의 해가 빛나고 있겠지요.

 

마티스는 맹장염으로 그림을 시작했고, 대장암으로 붓에 물감을 찍어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의 육체는 쇠약해졌지요. 그는 붓 대신 가위를 잡고 그립니다. 그의 말년 작품은 색종이를 오려 그린 콜라주이지요. 그는 나는 가위로 그린다.”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색종이는 이카로스를 하늘 높이 날게 한 밀랍날개였습니다. 이카로스의 날개는 열기에 녹을지언정, 습기에 젖지는 않지요. 마티스의 가위와 색종이는 우리에게 가파르나 포기할 수 없는, 자유를 향한 도전을 일깨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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