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실패가 두려우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마찬가지로 질투가 두려우면 큰일 같은 것 하지 않으면 된다.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질투 따위는 염두에 두지 말아야 된다.


질투는 어느 시대냐? 어떤 사회냐? 를 떠나 늘 존재한다. 경쟁이 심한 사회일수록 더욱 더 질투는 심화된다.


질투의 본질은 사람의 가치나 평판이 높아지고 행복해지는 것을 시기하는 마음으로 적 또는 증오를 함께 갖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큰일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질투를 감수해야 한다. 특히 정치인들 세계에서는 질투로 시작 질투로 끝난다.


그런 세계에서 질투를 두려워하면 정치할 수 없다. 그렇다고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질투를 벗어나 인신공격에 가까운 질투가 성행한다.
정치를 하려면 질투 같은 것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질투가 단점만 있는 게 아닌 장점도 있다. 질투를 하데 맹목적인 것 보다는 무엇인가 목적을 두고 질투를 하게 되면 자기발전에 원동력이 된다.
공부를 잘 하는 친구를 질투 친구에게 지지 않겠다고 생각 열심히 공부를 한다면 그것은 질투가 단점 아닌 장점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남과 비교 질투심에 심리적 에너지를 쓸데없이 소모시켜서 자기 자신을 불행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질투를 경쟁심으로 승화시켜서 실력을 쌓고 내면을 충실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일에나 뛰어난 재능을 발휘 남에게 강한 질투를 받는 처지가 됐을 때는 더욱 정진해 남의시기를 사지 않도록 각별히 언행을 주의해야 한다.


질투를 하게 된 동기에는 대부분 타인과 비교를 하는데서 생겨난다. 그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비교를 하지 않으면 질투 같은 것 생기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중의 한 사람인 아이스 칼로스는 “질투심이 전혀 없이 친구의 성공을 기뻐할 수 있는 강한 성격의 사람은 없다”라고 했다.


인간의 심리 중에 너나없이 질투심이 도사리고 있다. 다만 그런 성격이 강하느냐 약하느냐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질투를 단순한 질투로 끝내느냐 아니면 적극 활용 자기발전의 기회로 삼느냐는 차이다.


큰 나무가 바람에 보다 많이 노출되듯 사람도 마찬가지다. 큰
일을 하려는 사람일수록 보다 더 많은 질투를 받는다. 그래서 큰 일 할 생각이라면 질투 같은 것에 게의 치 말아야 한다.
큰일하려다 보면 질투 받는 것 필연이다.


평소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만 받던 사람이 국회의원선거에 출마 몇몇 후보들과 경쟁을 하게 되자 다른 후보들로부터 질투가 시작 칭찬받던 것들은 오간데 없이 단점만 들춰내 망신을 사는 것 종종 볼 수 있다.
질투가 그렇다. 그런 질투 때문에 망신 사기 싫어 국회의원 출마 또는 국가 중요요직권유를 뿌리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질투가 곧 험담으로 이어진다. 질투의 본질이 험담이다. 그런 험담 그런 질투에는 침묵하는 것이 최선이다.


무엇인가 하다보면 질투는 기본이다. 뿐만 아니라 보다 더 큰 일 일수록 보다 더 많은 질투가 따른다.
질투가 또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의 수단으로 쓰인다는 것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큰일 할 생각이면 질투정도는 감수할 생각을 가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질투가 단순한 질투여야지 질투가 질투를 넘어 인신공격이 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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