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단체가 미성년자를 이용한 음란물을 제작·소지한 혐의 재판 150여건을 분석한 결과, 실형 선고가 내려진 경우는 20%에 불과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미성년자를 협박해 성착취 동영상을 찍고 이를 텔레그램에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 등 일명 ‘n번방 사건’ 운영자 및 이용자들에 대해서도, 결국 재판에서는 가벼운 처벌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아동성착취영상물대응TF(TF)는 2018년 11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아동청소년보호법 제11조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죄’가 적용된 150여건의 재판을 분석한 결과, 실형을 선고받은 건은 30여건이었다고 30일 밝혔다. 그리고 이마저도 징역 6개월이나 1~2년 사이 단기간이 많았다고 TF 측은 전했다.

이 TF에서 활동하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박예안 변호사는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대부분 실제로 아동을 강간했거나 폭행치사 등 다른 범죄까지 저질러 경합이 된 경우가 많았다”며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죄 조항만 적용된다면, 실제 형량은 더 낮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실제 판결문 내용을 보면 (범죄자에 대해) 굉장히 잘못된 성 인식 등을 길게 설명한 후 고작 1년6개월 정도의 선고를 내린다”며 “실제 형량 자체가 너무 낮다”고 전했다.

조주빈의 혐의 중에는 아동청소년보호법 제11조 중 제1항(아동음란물제작)이 포함돼 있다.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제작·수입 또는 수출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제5항의 경우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임을 알면서 이를 소지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김한균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 법은 미성년자 음란물에 대해 제작부터 수익, 지출, 판매, 대여, 배포, 제공, 알선, 소지, 심지어 미수까지 거의 모든 관련 행위를 징역형으로 처벌하게 해놨다”며 “단순 소지까지 처벌하는 것은 경미한 행위까지 모두 처벌한다는 뉘앙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 사례 분석 결과, 법 조항과 실제 선고 형량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박 변호사는 “법 조항과 실제 판결 간 온도 차가 너무 크다”며 “미국 같은 경우 아동이 나오는 음란물은 단순 소지만 해도 대부분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아 너무 과하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고 지적했다.

TF는 국내 법관들의 이런 경향성에 반발해 결성됐다. 지난해 논란이 된 ‘웰컴투비디오’ 사건이 TF팀 결성의 직접적 계기가 됐다.

‘웰컴투비디오’는 아동 성착취 영상 유포로 불법 수익을 챙긴 사이트인데, 이곳 창설자의 경우에도 실제 선고받은 형량이 1년6개월에 불과하다.

박 변호사는 “이 사이트 운영자 손모씨는 1심에서는 집행유예로 풀려나기까지 했었다”며 “여기서 아동성착취 영상물을 9000건이나 내려받은 사람도 벌금 300만원 정도로 끝났다”고 밝혔다.

TF팀은 아동 이용 음란물죄의 형량 현실화를 요구하기 위해 이번 분석 자료를 내놨다. TF팀은 이 자료를 이번 주 초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다음 달 20일 해당 위원회가 아동·청소년 대상 음란물 범죄에 대한 적절한 형량 등을 논의할 계획인데 여기에 양형 기준을 높이자고 건의하기 위해서다.

박 변호사는 “양형 기준이 높아지면 판사는 이 기준에 못 미치는 판결을 할 때 더 적극적으로 사정을 설명해야 할 것”이라며 “양형 기준이 높아져 처벌이 현실화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자료가 조주빈을 비롯한 이번 n번방 사태의 운영자 및 이용자의 양형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 연구위원은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 새로운 법을 제정해 봤자 소급이 안 돼 소용이 없다”며 “n번방 가담자를 엄벌하려면 양형기준의 권고형량 범위를 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원은 ‘초범이라서’, ‘반성해서’, ‘피해자와 합의해서’ 등 이런저런 이유로 가벼운 판결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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