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연 결정적 인물들 중 하나로 꼽히는 최영미 시인이 산문집 ‘아무도 하지 못한 말’로 돌아왔다.
이번 산문집은 2009년 펴낸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이후 9년 만이다.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은 그가 지난 4~5년 동안 신문이나 잡지 등에 기고했던 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올려 독자들과 소통했던 글, 비공개로 썼던 일기 등을 다듬어 엮은 책이다.
작품 ‘괴물’을 통해 문단 내 성폭력을 폭로하고 2018년 불어온 미투 운동에 불을 붙였던 최 시인의 ‘기록’인 셈이다.
‘저는 싸우려고 시를 쓴 것이 아닙니다. 알리려고 썼습니다.’
최 시인이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미투 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시 ‘괴물’을 낭독한 뒤 한 말이다.
그가 ‘알리기’ 위해 써왔던 글들을 모아보면 우리나라 문단 내에, 또 1980년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빚어졌던 만행들을 파악할 수 있다.최 시인도 “내가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그 시절을 글로 불러오는 것은, 80년대가 여성들에게 어떤 희생을 강요했는지 말하고 싶어서다”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삶을 살아오면서 최 시인이 마주했던 현실에 대한 고찰도 담겼다.
최 시인은 삶을 ‘끝없이 타협을 배우는 일’이라고 규정한다. 늘 올바른 쪽도 없고, 늘 틀린 쪽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철이 들었노라고. 세상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자체가 무의미해 보일 때도 있었고 지금은 타협을 하지 않으면 하루도 살 수 없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타협을 배우는 삶의 과정에서 스스로 망가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최 시인은 책 속 ‘작가의 말’을 통해 “나의 가장 밑바닥, 뜨거운 분노와 슬픔, 출렁이던 기쁨의 순간들, 시시하고 소소하나 무언가를 만들어냈던 시대의 일기로 읽히기 바란다”고 전한다. 272쪽, 해냄출판사, 1만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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