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할머니’는 어떤 존재일까.
좀처럼 다뤄지지 않는 ‘할머니’들을 기록한 도서들이 잇따라 출간돼 눈길을 끈다.
집 안의 여자 어른, 할머니. 우리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와 함께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면서도 집에서나 밖에서나 대우받지 못했다. 자랄 때나 결혼 이후에나 가부장적 문화의 피해를 입었고 사회적으로도 평등한 대우와 기회를 보장받지 못했다.
일부는 최근까지도 이러한 풍토에 익숙한 채로 산다. 현대에는 맞벌이 부부 자식들의 자녀, 손자·손녀 육아를 감당하는 등 할머니가 됐음에도 쉬지 못하고 여전한 고생을 이어가기도 한다.
우리의 ‘엄마’가 나의 어머니이기 이전에 한 여성이고 꿈 많던 소녀였던 때를 주목했던 것처럼 우리 할머니에게도 온전한 역사가 있다.
최근 출간된 소설집 ‘나의 할머니에게’와 가족의 역사를 담는 책 ‘그랜마북’은 늘 곁에 있었지만 또렷하게 주목받은 적은 없었던 우리 할머니의 모습을 살펴보며 그들의 존재성을 되짚어보게 한다.
‘나의 할머니에게’는 현대 우리나라 문단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여성 작가 6명(윤성희·백수린·강화길·손보미·최은미·손원평)이 우리 할머니들의 삶을 각자의 감각과 개성을 담아 쓴 소설 모음집이다.
2019년 김승옥문학상 대상 수상자 윤성희 작가의 ‘어제 꾼 꿈’, 2020년 현대문학상을 받은 백수린 작가의 ‘흑설탕 캔디’, 2020년 젊은작가상 대상 작가 강화길의 ‘선베드’, 젊은작가상 최다 수상자 손보미 작가의 ‘위대한 유산’과 2018년 대산문학상 수상 최은미 작가의 ‘11월행’, 아시아권 소설 최초로 일본 서점 대상을 받은 손원평 작가의 ‘아리아드네 정원’ 등이 수록됐다.
작가들은 각 이야기를 통해 ▲연락 없는 자식에게 서운하면서도 손자·손녀에겐 잘 해주겠다 생각하는 할머니 ▲지금은 외롭고 고독하게 지내지만 어릴 적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특별한 인생을 그렸던 할머니 ▲치매에 걸려 하나 뿐인 손녀를 걱정하면서도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혼자 남을 손녀를 걱정하는 할머니 ▲나만 몰랐던,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춰진 할머니의 모습 등을 표현한다.
이와 함께 세월의 흐름에 대한 고찰, 가까운 미래에 펼쳐질 수 있는 노인 문제와 세대 갈등 등도 조명한다.
네덜란드 여성 엘마 판 플리트가 펴낸 ‘그랜마북’은 ‘나의 할머니에게’보다 직접적이다. 할머니에 대해 알 수 있는 질문과 답변 공간으로 구성됐다. 독자와 독자의 할머니가 직접 만드는 ‘할머니의 인생책’인 셈이다.
저자는 2001년 어머니가 아팠던 시기 어머니로부터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 더 듣고 싶은 이야기를 묻고 정리했다. 각종 질문과 답변들은 어머니의 삶을 기록한 어머니의 인생책 ‘마더북’으로 만들어졌다.
엘마 판 플리트는 마더북 이후 할머니에게 드릴 책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에 ‘그랜마북’을 만들기로 했다. 책을 만들면서 만난 많은 할머니와 손자·손녀들로부터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랜마북’에 걸맞는 질문들을 추렸다.
무엇보다 손자녀와 할머니가 함께 할머니의 인생책을 만들면서 지난 시간을 되새기고, 알 수 없던 할머니의 삶을 알아가는 시간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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