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60세 이상 정년을 의무화한 2016년 이후 민간 기업에서 고령자 고용이 확실하게 늘어난 반면 청년 고용은 줄였다는 국책 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정년을 추가로 연장할 때 청년층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입증된 것이다.

정년 연장 수혜자가 5명 늘 때 기업은 청년 고용을 1명꼴로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경향은 사업체 규모가 크고 고용 보호가 상대적으로 강한 사업체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정년 연장의 필요성이 커졌지만, 과거와 같이 급속한 방식을 택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더해졌다.

정부의 경제 정책 관련 싱크탱크(Think-Tank)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4일 ‘정년 연장이 고령층과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효과’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10인 이상의 민간 사업체에서 정년 연장으로 인한 수혜자가 1명 늘어날 때 15~29세 청년층 고용은 약 0.2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고용노동부의 고용보험 DB 원자료(2013년 3월~2019년 3월)를 토대로 한 분석으로, 정년 연장 수혜자는 정년 연장으로 은퇴 시점이 늦어지는 고령 근로자를 의미한다. 60세 정년 연장이 의무화된 지 5년밖에 지나지 않아 국내 실증 연구는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수치를 통해 청년 고용에 미치는 타격을 입증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업체의 규모가 클수록 정년 연장으로 인해 고령 고용이 청년 고용을 구축하는 효과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정년 제도를 운영하는 비중이 50%를 넘지 않는 100인 미만(10~99인) 사업체에선 정년 연장에 따른 청년 고용 감소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100인 이상 사업체를 보면 100~499인 -0.188명, 500~999인 -0.258명, 1000인 이상 -0.996명 등으로 청년 고용을 줄인 것으로 추정됐다. 1000인 이상 대기업에선 정년 연장으로 고령 고용이 1명 늘 때 청년 고용도 1명 감소한 셈이다. 다만 매우 큰 규모의 사업체에서의 추정 결과는 이상치(outlier)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고 KDI는 부연했다.

정년이 어느 정도 수준에서 형성돼 있었느냐에 따라서도 결과 값이 달라졌다. 기존 정년이 55세였거나 그 이하인 경우 정년 연장으로 고령 고용이 1명 늘 때 청년 고용이 -0.391명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6~57세에서 정년을 두고 있던 기업에서도 -0.231명의 청년 고용 감소 효과가 났다. 그러나 58세(-0.007명), 59~60세(-0.034명) 등에선 감소폭이 0명에 가깝게 낮아졌다.

보고서를 작성한 한요셉 KDI 연구위원은 “정년을 한 번에 큰 폭으로 증가시키는 방식은 민간 기업에 지나친 부담으로 작용해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정년을 크게 증가시켜야 하는 기업은 부담을 줄이기 위해 명예퇴직이나 권고사직 등을 확대 시행할 가능성이 있으며 특히 신규 채용을 줄여 청년 고용을 감소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한 연구위원은 2013년 고령자고용법이 개정된 이후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 과거의 정년 연장이 너무 큰 폭으로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고령(55~60세) 고용을 늘린다는 점에서 실효성은 있었지만, 청년 고용을 그만큼 줄이기 때문에 적게는 55세에서 60세까지 정년을 높이는 과거와 같은 방식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 보고서에서 그는 민간 기업에서 정년 연장 수혜자가 1명 늘 때 고령층 고용이 약 0.6명 증가했음을 확인했다.

그는 “제도적 정년의 연장이 사회적 합의로 결정되더라도 충분히 긴 기간에 걸쳐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시행함으로써 노동 시장에 가해지는 충격이 충분히 흡수될 만한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며 “고령 인력의 직무 설계를 포함한 노무 인사관리 변화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점, 현재 출생연도 4년당 1세씩 증가하고 있는 연금수급개시연령의 변화 속도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년 연장에 따라 더 많은 고령층 고용을 보장하는 경우는 대기업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며 중소 규모 사업체에선 조기퇴직, 권고사직 등이 보다 빈번하게 시행된다는 점에서 정년 추가 연장 시 이들을 위한 일자리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점도 짚었다. 한 연구위원은 “정년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임시·일용직 고령층을 위해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가 원활히 창출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공공기관에서는 정년 연장으로 고령층 고용이 늘더라도 청년 고용이 감소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년 연장과 함께 공공기관이 55~60세 고용을 0.403명 늘리면서 청년층 고용도 1.218명 증가시켰다.

일정 연령 이상의 고용 보장을 전제로 임금 체계를 조정하는 내용의 ‘임금피크제’가 2015년부터 전체 공공부문으로 확대되면서 신규 채용이 강제됐던 점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한 위원은 짚었다. 30대 후반~40대 초반에서 부정적 효과가 나타난 데 대해선 매년 청년 미취업자를 정원의 3% 이상 고용해야 하는 의무의 영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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