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이스탄불
오르한 파묵 이후 터키가 배출한 가장 걸출한 문인으로 평가받는 소설가 부르한 쇤메즈의 세 번째 소설이자 대표작이다.
잔인하리만큼 고혹적인 도시 이스탄불의 깊디깊은 지하감옥. 시멘트벽으로 구획된 좁디좁은 감방 안에 나이도 직업도 성향도 전혀 다른 네 남자가 함께 갇혔다. 아마도 혁명운동에 연루됐을 것으로 짐작되는 네 남자는 서로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를 고문의 두려움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재미난 이야기를 풀어낸다.
흰고래를 찾아 평생 먼바다를 떠돌다 패배한 늙은 어부, 해도 위에 가상의 섬을 그린 후 자신이 사랑한 여인의 이름을 지어주는 해도 담당 선원, 기발한 수완으로 강간을 모면하는 수녀, 벽의 거짓말에 속는 외딴마을 사람들, 사람의 영혼을 가진 늑대, 딸의 딸이자 손녀이자 남편의 여동생인 아이와 둘이 살아가는 노파.
여기에 에피소드 사이사이를 메우는 네 남자의 사적인 내러티브는 땅 위와 땅 아래, 이야기 안과 이야기 바깥, 수천년 시공간이 얽히고 설키며 거대한 태피스트리로 완성된다. 고현석 옮김, 392쪽, 1만4500원, 황소자리.
    

 

◇선샤인의 완벽한 죽음
범유진의 장편소설이다. 무아교는 모두의 낙원을 꿈꾸며 기회의 평등이 보장된 환경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사립 학교다. 보랏빛 용담꽃이 흐드러지게 핀 8월 1일, 무아교의 여신 선샤인이 시체로 발견된다.
학생들이 동요하는 가운데 학교는 별일 아니라는 듯 선샤인의 장례를 하루 만에 마무리 지어버린다. 다음 날, 학교 곳곳에 ‘내가 선샤인을 죽였습니다’라는 메모가 붙는다. 이 일을 계기로 철저하게 베일에 덮여 있던 무아교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부조리한 속사정과 비극적인 사연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유토피아를 꿈꿨으나 한순간에 디스토피아가 되어 버린 무아교의 모습을 보며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 고질적인 교육 문제, 윤리 의식을 잃고 비뚤어진 행동을 서슴지 않는 일부 사람들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작가는 꼼꼼한 취재와 치열한 조사를 통해 지금 이 시점에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문제 의식을 작품 속에 절묘하게 녹여 냈다.
선샤인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추리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 아이들이 처해 있는 경쟁 일변도의 교육 현실, 자포자기하듯 타고난 계급을 받아들이는 슬픈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떤 선택지를 골라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368쪽, 1만3000원, 안전가옥.
    

 

◇곱세크
‘인간희극’으로 프랑스 현대 리얼리즘 소설의 정점에 오른 오노레 드 발자크의 중편소설 ‘곱세크’가 국내에 처음 번역·출간됐다.
‘인간희극’은 발자크가 20여 년에 걸쳐 집필한 장·단편소설 100여 편을 유기적으로 엮어 묶은 총서다. 크게 풍속 연구, 철학 연구, 분석 연구로 나뉜다.
그 중 1부 풍속 연구는 프랑스의 지방과 다양한 사회 계층에 관해 탐구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다시 사생활 장면, 지방 생활 장면, 파리 생활 장면, 정치 생활 장면, 군인 생활 장면, 시골 생활 장면으로 나뉘는데, 이 작품은 ‘사생활 장면’에 속해 있다.
‘곱세크’는 이야기 속 이야기 형식으로 어느 고리대금업자의 삶을 전한다. ‘돈의 화신’이라 할 금융가·자본가의 삶에, 인간의 무한한 욕망으로 굴러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황폐하고 적나라한 내면 풍경이 압축되어 있다.
김인경 옮김, 182쪽, 1만1500원, 꿈꾼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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