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6년 조선에서는 정조가 새로운 왕이 되었다. 정조가 등극하면서 김홍도는 도화서를 대표하는 최고 화가로 급성장했다. 1776년에 그는 32세였다. 이해에 김홍도는 ‘군선도’를 그리면서 병풍화의 대가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왕의 화가’로 이름을 날렸던 조선시대 최고 화가 김홍도(1745~1806?)는 누구일까?
현시대, ‘씨름’이 담긴 ‘단원풍속화첩’(보물 제527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으로 ‘풍속화가’로 알려진 그의 존재감을 다시 불러낸 책이 나왔다.
장진성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가 ‘단원 김홍도-대중적 오해와 역사적 진실’을 출간했다.
장 교수가 책을 준비하면서 가장 고심했던 건 ‘단원풍속화첩’ 속의 서당, 씨름, 대장간 그림의 작가로만 김홍도를 인식하고 있는 대중들의 그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단원풍속화첩’의 그림들은 신문, 잡지, 방송 등 대중매체뿐 아니라 농산물 광고, 민속 관련 행사를 통해 널리 알려졌으며 심지어 민속주점, 한식당, 관광호텔의 내부 장식용 이미지로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장 교수는 “이 화첩은 결국 김홍도를 한국적 풍속화가라는 범주 안에 가두어버리는 부정적인 역할과 그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어왔다”고 지적했다.
“김홍도는 풍속화뿐 아니라 산수화, 도교 및 불교 관련 그림인 도석화, 화조화, 인물화 등 모든 그림 장르에서 탁월한 기량을 발휘한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였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김홍도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고 그의 진정한 모습을 알리기 위해 쓰였다”
장 교수가 김홍도에 집착하기 시작한건 2005년 가을.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에서 펠로우로 있던 당시 청나라 초기 화가 왕희의 특별전을 준비하면서다. “만약 한국의 화가 한 명을 선정해 특별전을 연다면 누구를 어떻게 소개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때 떠오른 인물이 김홍도였다. 그리고 이후 그의 생애와 예술을 어떻게 조명할 것인가를 늘 고민해왔다”
이 책은 그의 오래된 고민과 연구의 결과.  ‘한국적 풍속화가’로 좁혀진 김홍도의 모습을 ‘18세기 후반 동아시아 화단을 뒤흔든 천재 화가’로 조명한다.
특히 김홍도와 정조의 관계에 주목한다. 김홍도가 당대 최고의 화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정조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왕세손 시절 처음 초상화를 그리면서 맺어진 이 둘의 인연은 정조의 재위 기간(1776~1800) 내내 이어졌다. 즉위 이후 정조는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규장각을 김홍도에게 그림으로 그리게 하는 등 궁중의 모든 그림 관련 일을 맡겼다. 이외에도 정조의 명을 받은 김홍도는 금강산과 영동 지역을 직접 방문하고 실경산수화를 제작했으며(1788), 대마도로 건너가 지도를 그려왔다고도 전한다. 이후 정조의 화성원행(1795), 화성 건설(1796년 완성)과 관련된 그림 작업을 총괄하였다”
김홍도의 생애와 작품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고찰한 이 책은 ‘가장 조선(한국)적인 풍속화가’라는 대중적 통념에서 벗어나 역사적 진실 그대로의 김홍도를 복원한다.
저자는 “김홍도는 병풍화의 대가였다”고 분석했다. “김홍도가 남긴 대부분의 명작은 모두 병풍화이다. 그는 병풍화를 통해 새로운 회화적 실험을 감행하였다. 그가 남긴 신선도, 풍속도, 금강산도, 평생도, 책거리 그림, 수렵도는 19세기 병풍화의 모델이 되었던 선구적 작품들이다”(p.84)
정조가 즉위한후 줄곧 ‘왕의 화가’로 특별 대우를 받았던 김홍도. 1783년 무렵 조선 왕궁 도화서 내에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국중 최고의 화가로 성장한 1776년 그의 나이는 32세, 이해에 김홍도는 ‘군선도’를 그렸다.
‘군선도’는 어떤 그림일까.  “개인의 주문을 받아 김홍도가 제작한 그림이다. 따라서 ‘군선도’를 그릴 때 김홍도는 정묘한 화풍 구사와 같은 도화서의 규칙을 따를 의무가 없었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자신이 원하는 화풍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가 도화서 화원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개성적인 화법을 사용해 그린 최초의 회심의 역작이 바로 ‘군선도’이다. 이 그림을 통해 김홍도는 다양한 회화적 실험을 감행했다”(p.104)
저자는 “건륭화원을 대표했던 서양의 퇴장과 정조 시대 도화서를 대표했던 김홍도의 등장이 1776년 전후에 일어났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며 “18세기 후반 조선에서는 김홍도를 능가하는 화가가 없었으며 아울러 동아시아에서도 가장 뛰어난 화가였다”는 점을 알린다.
책에는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군선도’와 ‘삼공불환도’등 다양한 도판을 제공, 탄탄한 연구서를 읽는 재미와 함께 그림도 살펴볼수 있다. 484쪽, 사회평론아카데미, 3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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