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의 가치·노선·정강·정책을 망라해 ‘꼰대’라는 오명이 붙은 당의 체질까지 확 뜯어고치는 고강도 쇄신을 예고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구조조정은 보수의 재건보다 역으로 보수진영을 갈아엎을 ‘파괴적 혁신’이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김 위원장은 통합당을 살리기 위해 당 재건에 나섰지만 이에 따른 파장은 통합당에만 국한되지 않고 기존 정당 질서 체계를 무너뜨리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는 회고록에서도 “정치인들은 겉으로는 혁신을 말하면서도 현 상태를 유지 관리하는 ‘지속적 혁신’ 수준에만 머물지 시스템의 근본을 바꾸는 ‘파괴적 혁신’은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이 지금까지 낸 메시지 등을 종합하면 ‘김종인표 쇄신’은 기본적으로 창조적 파괴, 파괴적 혁신에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종인의 창조적 파괴는 9년 전에도 시도한 바 있다. 2011년 12월 한나라당(통합당 전신) 비상대책위원 시절 “한나라당이 창조적 파괴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브랜드를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김 위원장은 요구하면서 정강에 명시된 보수 용어를 상당수 삭제한 바 있다.
민주당 비대위 대표 시절인 2016년에도 김 위원장은 창조적 파괴 전략을 썼다. 그는 북핵 실험으로 안보 불안이 가중되자 진보 진영에서 북한을 향해 쓰길 꺼려하는 ‘궤멸’이라는 용어를 언급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대북 친화 정책만을 고수하는 민주당에 등을 돌린 유권자를 다시 돌려 그해 총선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봤다.
한나라당 비대위에 참여한 데 이어 9년 만에 다시 같은 당 비대위를 이끌게 된 지금은 단순히 정강에서 ‘보수’ 용어를 삭제하는 수준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의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정당 모델을 제시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진보, 보수, 중도라는 말 쓰지 마라. 자유우파라는 말도 쓰지 마라”고 김 위원장이 통합당에 지시한 것도 이념에 치우친 정당으로는 국민적 지지를 얻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 안팎에선 독일 기독민주당(기민당) 사례가 김 위원장의 쇄신 방향을 예상할 수 있는 일종의 척도가 될 것이라는 말도 흘러나온다. 김 위원장은 최근 원외조직위원장을 상대로 한 비공개 특별강연에서 “독일 기독민주당이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깨닫고 정책 수정을 했듯 통합당도 보수, 시장만 고집하지 말고 현실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유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