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

지금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오는 11월 대선에서 재선(再選)되는 것이다.
로마 제국의 시대에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다’면, 트럼프 시대의 모든 문제는 ‘트럼프의 재선’으로 통한다. 그런 측면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국내외 정책의 실행 기준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유리한 정책인가, 불리한 정책인가’에 대한 전략적 판단과 맞물려 있다.
 
한마디로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인이다.그는 모든 것을 경제적 이익으로 계산한다.정치도, 군사도, 외교도, 그에게는 경제적 이익의 관점에서 정의된다. 정치인은 이념 중심의 사고를 하지만, 경제인은 이익 중심의 사고를 한다. 이것이 트럼프 대통령과 기존 워싱턴 정치인들과의 차이점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미국인들은 그런 트럼프 대통령의 캐릭터를 좋아한다. 바로 이 점이 트럼프 대통령의 차별화 전략이기도 하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오직 자신의 이익, 트럼프 행정부의 이익, 미국의 이익, 지지자들의 이익만이 꽉 들어차 있다. 이런 독특한 그의 생각이 그를 대통령에 당선시켰고 여전히 성공적인 재선을 보장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과 신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기존의 미국이 내세웠던 민주주의, 자유, 인권 등과 같은 가치나 이념은 더 이상 큰 매력 포인트가 아니다. 그리고 별 관심의 대상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가치가 지금의 미국이 처한 경제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럼프의 모든 국내정치적 행위는 얼마나 많은 지지자들을 결집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집약되어 있다. 그의 경제정책 또한 국제적으로는 ‘미국 최우선주의’에 맞춰져 있고, 국내적으로는 ‘지지자 최우선주의’에 맞춰져 있다. 미국 최우선주의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대외정책을 의미하며, 지지자 최우선주의는 국내 정치사회적으로 유권자들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지금과 같이 미국경제가 어려운 시점에 많은 미국인들은 미국의 재정이 더 이상 미국 밖에서 소진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 대신 보다 많은 미국의 재정이 미국과 미국인들을 위해 투입되기를 바란다.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적 ‘보호주의’와 군사 외교적 ‘고립주의’에 가까운 대외정책을 취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지금의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만들어 세계 평화, 안정, 경제번영의 유지에 기여해 왔던 미국이 더 이상 세계질서의 안정, 평화,
경제번영을 위해 막대한 지출을 할 필요가 없다는 선언이다.
 
미국이 이런 입장을 고수하고  나설 때 가장 불확실한 미래를 맞이할 나라는 어떤 나라들일까? 그것은 바로 미국이 구축해 온 자유세계질서 속에서 가장 큰 혜택을 누리고 급성장해 온 미국의 동맹국일 것이다. 그동안 미국이 자랑스럽게 강조해 왔던 대표적인 동맹국은 서유럽의 독일과 아시아의 일본이었다. 그러나 이들 두 동맹국 못지않게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성공적인 동맹국으로 손꼽았던 특별한 나라가 있다. 그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래, 미국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던 미국의 동맹국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불편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과 동맹국들 간의 적지 않은 불화(不和)가 자주 발생한다. 그 불화의 씨앗은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관(同盟觀) 때문이다.
 
트럼프 이전 미국 대통령들의 동맹관은 주로 자유, 민주, 인권, 평화라는 인류공존의 가치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미국은 이런 인류 보편적 가치 위에 수립된 자유세계질서를 지키기 위해 지정학적 요충지에 자리 잡은 크고 작은 국가들을 동맹의 끈으로 묶었다. 그 이유는 자유를 위협하는 구소련의 공산주의를 봉쇄할 목적이었다. 그리고 이 동맹국들을 향해 미국이 강조한 보편적 가치인 ‘자유’를 지키기 위해 미국은 전쟁의 참화 속으로 뛰어들었고, 전쟁의 잿더미에 뒤덮인 나라를 새로운 부흥의 길로 이끌기 위해 막대한 경제 원조를 쏟아부었다. 2차대전 이후 유럽 부흥을 위한 ‘마셜 플랜’(Marshall Plan)은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원조 프로그램이었고, 그 결과 독일은 2차대전의 잿더미로부터 회복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아시아에도 이와 유사한 미국의 동맹국이 두 나라나 있다. 바로 한국과 일본이다. 한국이 해방과 더불어 전쟁의 잿더미로부터 빠르게 도약해서 오늘날의 경제적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한미동맹이었다. 한미동맹은 미국의 경제 원조를 불러들였고 미국의 경제 원조는 한국 경제의 전후(戰後)복구를 쾌속화(快速化)시켰다. 그 결과 1960년의 국내 총생산(GDP) 규모는 2,498억 원으로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의 477억 원보다 5배 이상 증가했다. 전후 경제재건에 있어서 미국의 경제 원조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철저하게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맹목적 ‘경제 이익 우선’ 동맹관을 갖고 있다. 따라서 지금 트럼프 대통령 이후 미국과 동맹국들 간의 관계는 ‘불편함과 어색함’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관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보다는 미국의 경제적 이익, 미국의 안보이익을 우선시한다. 동맹국들을 향한 미국의 태도도 일방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목적을 위해서 동맹국들을 수단화한다는 느낌을 준다. 동맹국 간 공통의 가치, 공통의 목표, 공통의 이해관계도 미국의 국가이익에 부합될 경우에만 존중된다. 만약 이것들이 미국의 국익과 합치되지 않으면 무시되고 파기된다. 그리고 동맹국들에게 더 많은 방위비용을 거침없이 요구한다. 해외에 주둔해 있는 미군은 미국의 이익이 아니라 주둔국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 이상 미국은 자국의 재정을 낭비해 가면서까지 남의 나라의 안보를 지켜줄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한마디로, 미국 없는 세상에서 살아 보라는 것이다. ‘미국 있는 세상’과 ‘미국 없는 세상’ 가운데서 어떤 세상이 더 안전하고 평화스러우며 경제번영을 꽃피울 수 있는 세상인가는 직접 경험해 보라는 위협이다. 때때로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동맹국을 위협하기도 한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미국으로부터 자신들의 위협을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협받는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이후 이런 ‘위험한 세상’이 실제로 지금 우리 앞에 닥쳐왔다. 지난 5일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 불만 등을 이유로 독일에 주둔한 미군 9,500명을 오는 9월까지 감축하라고 미 국방부에 지시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보도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조치가 “동맹이 방위비를 더 분담해야 한다”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 때문인 것으로 해석했다. 현재 독일에 주둔해 있는 34,500명의 미군 중에서 9,500명이 철수한다면 독일주둔 미군은 25,000명으로 줄어든다. 그리고 로이터(Reuters) 통신은 독일로부터 철수된 병력의 일부가 다른 동맹국에 재배치되고, 나머지는 미국 본토로 돌아갈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충격적인 미군 철수 현상이 당장 우리에게도 들이닥칠 수 있다는 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중대한 미군 철수 결정이 메르켈 총리에게는 한마디의 사전 통보도 없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독일이 미군 주둔비용을 지불하지 못하겠다면 미국경제를 희생해가면서까지 더 이상 미군이 독일의 방위병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최후통첩이다.
  
여기서 참으로 우려스러운 것은 독일과의 방위비 문제로 실랑이를 펼치고 있는 와중에 미군 철수를 결심한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우리나라와도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주한미군 방위비 문제를 조기에 타결 짓지 않으면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에서 행했던 미군 철수를 한국에서도 똑같이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 이 점과 관련하여 뉴욕타임스(NYT)는 “일부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 미군 감축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관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릭터상 예측 불가능성과 불확실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감정의 기복에 따라 어떤 정책 결정을 내릴지조차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대통령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반면에 그의 기분에 맞춰 정책보조를 취할 때는 그 어떤 복잡한 문제도 쉽게 받아들이는 매우 편안한 대통령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지금 한반도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보이지 않는 김정은의 국정 리더십, 김여정의 후계 구도와 맞물린 대남 강경정책의 시그널, 코로나19 이후 북한 급변사태의 가능성, 특히 북한의 정치 불안정에 따른 핵통제력 상실 등에 대한 미국의 민감한 우려와 정찰행위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한반도 리스크가 매우 커질 위험에 놓여 있다. 설상가상으로 한반도는 지금 미·중 패권경쟁 구도와 미·중 무역전쟁의 소용돌이에 빨려들 가능성도 커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한국은 미·중 양측으로부터 진영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여기에 한미동맹은 사사건건 불편한 관계를 노정(露呈)하고 있다. 그중 핵심이슈가 바로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문제, 대북문제, 중국문제이다. 그리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 문제를 포함한 일본과의 군사외교문제도 예외는 아니다. 여기에 미국은 최근 들어 한국의 대중국 경제의존도를 낮추고 미국 중심의 경제 질서에 더 강력하게 편속시킬 목적으로 탈중국-경제번영네트워크(EPN)의 참여를 적극 압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재 미국은 우리 정부에게 13억 달러(약 1조 5천 700억 원) 규모의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 이런 복합적 상황에서 걱정스러운 것은 반(反)해양적(반미, 반일) 성향이면서 친(親)대륙적(친북, 친중) 성향을 갖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혹시 속으로 은근히 미군 철수를 바라면서 미국이 요구한 방위비 분담금 합의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는 전술을 펼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방식으로 반격 대응을 해 올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독일에서와 꼭 같은 방식으로 문 대통령에게 아무런 사전예고도 하지 않은 채, 주한미군 일부를 철수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코로나 이후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지금의 한국 경제는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변하면서 경제가 급락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북한의 리더십 부재와 연동되면, 한반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위험의 사각지대로 변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만일 미국의 대통령 선거 양상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그런 선거판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출구전략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핵시설 폭파를 결심하고 나선다면,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핵시설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막을 그 어떤 카드도 놓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한미동맹이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미국의 북한핵시설을 향한 군사공격의 유혹은 커질 수 있다. 이 점을 북한도 알아야 한다. 미국의 파워 구조에 대한 이해가 일천한 문재인 정권도 알아야 한다.
 
한미동맹이 약화되어 미군이 철수하면, 북한은 ‘대남통일의 기회’가 올 것이고, 한국은 ‘민족자주통일의 시대’가 올 것이며, 중국은 ‘한반도를 중국의 영향권 하에 둘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생각하는 ‘착각과 환상’을 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그것은 미국 파워의 속성을 전혀 모르고 한 판단 착오이다. 한미동맹이 약화되어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미군은 북한 핵시설에 대한 군사적 폭격 유혹을 가장 크게 느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바로 폭파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할지도 모른다. 그런 측면에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북한의 대남 위협으로부터 남한을 막아 온 것뿐만 아니라 미군의 대북선제공격도 막아온 억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해 왔다. 북한 핵시설에 대한 미군의 공격은 필연적으로 중국의 개입을 초래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미·중 간의 패권전쟁은 전 세계를 화염의 불바다로 만들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이 발생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하지만 문제는 북한 핵이다. 이제 안보방위비 문제를 놓고 동맹국 간에 더 이상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노출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 자체가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중대한 전략적 실책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적당한 선에서 타협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정부의 요구에도 경청해야 한다. 동맹의 관계는 절대로 일방주의가 아니다. 동맹은 미국의 이익과 한국의 이익이 일치할 때만이 유지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과 캐릭터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한국과 독일에 대한 과중한 방위비 부담 요구는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미국도 달라진 한국이라는 동맹국의 입장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처럼 일방적인 접근 방식은 동맹국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
 
21세기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의 중심지대가 유럽 중심의 대서양으로부터 아시아 중심의 인도-태평양으로 이동했고, 미국의 패권 경쟁국이 중국에 맞춰져 있다면, 미국은 한국이라는 동맹국과의 관계를 더욱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유지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 요구를 마치 과거의 중국이 속국(屬國)이었던 조선을 향해 조공(朝貢)을 요구해 오듯 한다면, 지금의 한미동맹 관계는 매우 불편한 관계로 퇴보하게 될 것이다. 한미 양국은 빠른 시일 내에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타결 지어야 한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로 일어난 독일에서의 미군 철수가 한국에서의 미군 철수로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과 독일의 그것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초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

 

정석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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