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은 우리의 모든 감각이 깨어나고 잠드는 공간이다. 동시에, 방은 우리의 상상이 향하는 목적지다.
아날 학파의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는 17세기 말까지 아무도 혼자 지내지 않았다고 했다. 침실도, 심지어 침대도 공용이었다는 것이다.
18세기 들어서부터 사회 지위와 권위를 전시하는 무대로 기능하던 집이 기술 발전으로 사생활을 보장하는 안락한 공간으로 재정의됐다.  독서와 사색을 오롯이 즐기는 자기만의 서재가 만들어졌고, 여성이 주로 쓴 글쓰기용 책상도 보급되기 시작했다.
‘18세기의 방’은 한국18세기학회에서 활동하는 인문학자 27명이 ‘방’을 키워드로 18세기 방에 얽힌 이야기와 역사를 탐구한 책이다. 방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18세기 동서양에 나타난 주택구조, 인테리어 등의 변화를 추적하고 특히 사생활을 구성하는 방의 의미를 풀어냈다.
방에서 개인이 태어나고 사생활이 펼쳐진다. 방은 가장 내밀하기 때문에 가장 활발한 관계의 장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18세기의 방에는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숨길지, 누구를 들이고 누구를 차단할지 고민한 흔적이 있다.
귀부인의 화장방은 여성이 바깥으로 나가기 전 씻고 치장하는 사적 공간이지만 사교 공간이기도 했다. 방은 청결과 교양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미덕으로 가려지지 않는 몸의 진실이 공개되는 장소이기도 한 셈이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여주인은 실제 집처럼 완벽하고 화려한 미니어처를 인형집에 구현하고자 했다”며 “1718년에 네덜란드를 여행한 어떤 독일 여행자는 페트로넬라 오르트만의 인형집 가격이 2만에서 3만 길더 사이라고 기록했는데, 거의 실제 집값에 상응하는 가격이었다. 과장된 가격이라는 추측도 있으나, 이 기록은 네덜란드 인형집이 그만큼 화려한 스펙터클로서 이방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음을 방증한다”고 설명했다.
지극히 사적일 것 같은 공간에, 제국주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본격적으로 반려동물을 기르기 시작한 18세기의  초상화에는 애완동물이 함께 등장하는 사례가 많다. 그와 함께 은목걸이를 한 흑인 시동도 종종 등장한다. 당시 애완동물의 유행에는 흑인 시동이 포함됐다. 
1807년 노예제 폐지법이 영국의회에서 통과되기 전까지 영국과 식민지에는 노예가 존재했고, 부유층 여성은 흑인 시동을 거느렸다.
이들은 하인에 속했지만 사실은 재산으로 거래됐고 원숭이처럼 부와 유행을 과시하는 전시용이었다. 주인의 초상화나 가족 초상화에 절대 등장하지 않는 다른 하인과 달리 흑인 시동은 애완견, 원숭이, 앵무새와 함께 애완동물로서 포함됐다. 흑인 시동은 마치 개 목걸이를 연상시키는 은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 민은경·정병설·이혜수 지음, 440쪽, 문학동네,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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