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로 가득한 들판에 두 명의 남자와 한 아이가 있다. 그리고 어느새 일행은 셋에서 다섯, 일곱이 된다.
조선 영조 10년 착취와 수탈, 인신매매로 정국이 어수선한 시기 납치된 아내 간난을 찾아 길을 나선 학규가 있다. 그는 딸 청이와 장단잽이 대봉과 함께 조선팔도 유랑에 나서고,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니며 저잣거리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소리꾼 학규에게는 달리 아내를 찾을 방법이 없다. 그가 가진 재주, 소리뿐이다. 저잣거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소리를 들려주고, 아내 간난의 그림자 하나라도 그 흔적을 찾고 싶을 뿐이다.
그 이야기의 중심에 ‘심청가’가 있다. 학규는 자신이 지어낸 ‘심청가’에 곡조를 붙여 저잣거리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구슬픈 그 소리를 듣고있자니, 어미를 찾아 나선 청이에게 들려주는 것 같기도 하고 길동무가 된 일행들에게 또 극장의 관객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같기도 하다.
물론 ‘심청가’는 우리가 모두 아는 내용이다. 하지만 학규의 소리가 다르다. 학규를 연기한 배우 이봉근의 소리는 그 감정을 오롯이 담아낸다. 국악계 명창이자 젊은 소리꾼인 이봉근의 소리는 어느새 점점 다가와 마음을 울린다. 감정에 북받쳐 소리를 하다가 뛰쳐나가는 학규의 뒤로 뒷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저잣거리의 사람들과 같은 마음이 된다.
“소리 자체가 주인공”이라고 한 조정래 감독 발언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조 감독은 이봉근에게 촬영 초반부터 말하듯 소리를 해달라고 주문했고, 실제 영화에서 학규가 들려주는 소리는 우리가 아는 이야기임에도 하나의 전래동화를 들려주는 기분이다. 여기에 자막을 더한 건 관객들을 위한 배려로 보인다.
아역 배우 김하연의 발견은 반갑다. 첫 스크린 도전에 나선 이봉근과 함께 이 영화의 주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하연이 연기하는 청이는 학규의 가장 큰 동반자이자, 일행을 하나로 엮어주는 존재다.
학규 부녀와 그 일행의 유랑을 보고 있자면, 어느덧 ‘공동체’라는 말이 떠오른다. 영화가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길 위에서 우연으로 만난 이들이지만, 청이를 중심으로 공동체가 되어 있다. 땡중에 몰락양반까지, 그 일행도 어딘가 사회에서 한 발 떨어져 결핍을 갖고 있다. “이들이 청이를 돌보는 건지, 청이가 이들을 돌보는 건지” 조 감독은 질문을 던진다.
‘소리꾼’은 소리 영화이기도 하지만, 가족의 복원을 말한다. ‘심청가’를 택한 이유도 가족이다. 학규와 청이의 이야기 맞은 편에는 그가 전하는 심청이의 이야기가 있다. 같으면서도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영화 속 액자 구조로 펼쳐져 눈길이 간다.
‘심청가’를 주 소재로 한 만큼, 친근하면서도 예측 가능한 내용이다. 그래서 극의 전개나 이야기가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판소리가 어렵다거나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서정적으로 다가온다. 오랜만에 극장가를 찾은 판소리 영화로, 편안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대표적인 소리 영화 ‘서편제’의 오마주 장면도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7월1일 개봉.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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