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서 가평중·고 총동문회장
박범서 가평중·고 총동문회장

 

얼마 전 후배로부터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선배와의 대화' 프로그램에 참여해 달라는 전화가 왔다. 진로지도가 아닌 '선배와의 대화'라고 했다. 학업에는 그다지 열의가 없으나 성격 좋고 매사 적극적인 아이들이 참여한단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는 초반에 관심을 두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한 법, 처음부터 좀 파격적으로 시작했다. 먼저 세상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대답이 없었다.

  

난 소위 '운빨'이라고 했다. 학생들이 일제히 쳐다보았다.

  

"너희 의지에 따라 결정된 것은 아니니 지금 사는 그 가정에서 태어난 것도 운명이다."

  

"공전의 히트를 한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애초 주연은 이병헌, 원빈이 거론되었지만, 소속 기획사에서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송중기가 캐스팅되었는데 송중기는 그 드라마로 부와 인기를 얻고 송혜교와 결혼하고 이혼했는데 이 또한 운빨 아닌가."

  

이후 관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러 번 실패한 나의 2등 인생을 얘기하며 그래도 학교 다닐 때 반장, 회장은 도맡아 했는데 그 이유가 김구라의 그 '구라빨'이라고 했더니 학생들이 크게 웃었다.

  

그 후 본론으로 들어가 다소 진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일본의 생태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가 무한경쟁의 틀을 벗어나 자기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자연계 약자의 생존전략을 제시한 '이토록 아름다운 약자들'이라는 책을 소개했다. 느리고 게으른 나무늘보는 한 번 먹고 나무에 매달려 1주일 이상 움직이지 않으면서 이끼 낀 털이 맹수로부터 보호하듯 틈새를 찾아 생존하는 모든 생물은 승자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그러면서 동식물도 이러한데 개개의 한 인간은 얼마나 소중한 존재냐는 질문을 던졌다. 사실 요즘 자신의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고등학생은 극히 드물다. 어쩌면 부모의 바람이나 경쟁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학생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방해하는지도 모른다. 우선은 학생들의 자존감을 높여 주고, 부지불식간에 강요되고 비교되는 선택을 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꿈이라는 것은 물질적인 번영보다도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기쁨에 가득 찬 삶을 살아가는 것과 긴밀히 맞닿아 있다. 아무리 '운빨'이라고는 하지만 병아리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어미 닭은 알을 품고 알 속의 병아리는 부리로 껍질을 쪼아야 한다.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의 힘과 활기를 최대한 끌어모아 목표를 향해 움직이되, 자신보다 더 큰 그 어떤 힘에 계획을 맡기자"고 했다. 동서양 모두 진인사대천명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요즘 가평 4개 고교 동문회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가평 재능기부 전문인력뱅크' 설립에 매진하고 있다. 포털 사이트 같은 사이버 공간에 수많은 정보가 있다. 

  

하지만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서 태어난 선배들이 전해 주는 경험과 정보가 얼마나 유용한 지, 그리고 SNS가 대세라지만 직접 대화하고 정감을 나누는 아날로그 방식이 더해져야 비로소 완성된 관계망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여러 번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지만, 이번 선배와의 대화에서 학생들이 보여준 관심과 공감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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