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피’, ‘환영’, ‘선화’ 등 우리가 가족에게 기대하는 환상과 허위를 적나라하게 들추온 김이설 작가가 6년만의 신작 경장편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을 펴냈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의 장녀로 태어난 ‘나’의 이야기다.
‘나’는 일흔이 다 되어가도록 평생 기운이 없는 사람이었던 아버지, 무기력한 가장을 대신해 집안의 모든 결정을 도맡아온 어머니, 남편의 폭력을 피해 세 살과 갓 백일 지난 아이를 품에 안고 집에 돌아온 동생와 함께 낡고 오래된 목련빌라에 살고 있다.
‘나’는 똑똑하고 야무져 늘 전교 상위권을 유지하는 동생과 달리 한 번도 무언가가 되고 싶다거나 애써 노력을 기울여 본 적이 없다. 어느 날 자신이 보통 사람들이 추구하는 일반적인 삶의 방식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하는데, 바로 ‘시’를 쓰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생이 다시 집으로 들어온 3년 동안은 시를 쓰지 못하고 있다. 낮밤으로 일하는 동생을 대신해 결혼도 하지 않은 자신이 육아를 도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가족들로부터 받는 상처난 현실을 견디기 위해 시를 필사하기 시작한다.
작가는 ‘나’의 이야기가 이른바 한국의 장녀 ‘K장녀’에 대한 서사라고 말한 바 있다. 시인 지망생인 ‘나’는 40대 비혼 여성이고 장녀다. 여동생의 이혼으로 조카들의 ‘돌봄노동’을 맡게 되고 각종 집안일에 시달리며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은 조금도 주어지지 않는다.
K장녀의 현실적 상황을 비추고 나아가 진정한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는 열망을 되찾는 과정을 담고 있다.작가정신, 196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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