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정의 공정 탈 쓴 위정자 시대가 바뀌니 사용하는 말의 뜻도 달라지는 게 적지 않다. 20세기 후반 이후 신조어라며 새로운 말들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횡횡하더니 21세기 들어 걸핏하면 듣지도 보지도 못 했던 말들이 난무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수백 년 전해 오던 용어마저 어찌 된 것인지 듣다보면 헷갈린다. 그래서 같은 말을 듣고도 말하는 사람 생각과 말을 듣는 사람 사이 소통이 이루어 지지 않아 바보 꼴이 되기도 한다. 한 예로 정의와 공정만 보아도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물론 잘 못 사용하고 있긴 해도.
서양문화의 철학적 기초를 세운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정의正義를 지혜와 용기와 절제의 조화를 이르는 말이라 했다. 
또 이런 말이 있다. 권력이 정의를 정략으로 사용할 때 정의는 폭력이다. 그래서 소위 인권을 중시하는 국가에서는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하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고 했다. 그런 정의를 착각하는 사람 그것도 위정자로 상당한 지도자급 위치에 있는 자가 불의가 분명한 행위를 두고 정의라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지껄이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국민에게 부여 된 4대의무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남자는 법에서 정한 나이가 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반드시 해야 할 국방의무가 있다. 국방의무, 병역의무에는 특권이 없다. 그런 군대 안가도 될 사람이 군대에 간 것은 대단한 헌신이라는 의미로 모정치인의 아들이 군대에 간 것을 두고 안중근의사가 중국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라고 했던 말을 인용 두둔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나라 국민이다. 그런 위대한 사람을 두고 탈영운운하며 죄인 취급을?
한 정치인이 같은 당 소속 정치인 A씨의 아들이 성치 않은 몸으로 군대 가지 않아도 되는데 군대를 갔으면 상을 주고 칭찬을 해야 하는데 병가와 휴가를 내고 그 날자가 지나 귀대하지 못하고 그것도 전화로 병가연장신청을 했었다는 데 그게 잘 못됐다고 탈영이니 하는 것은 잘 못된 게 아니냐며 두둔하고 나섰다. 그에게는 또 다른 평등 공정 정의 그리고 병역관련 법이 있는 것을 국민들만 잘 못 알고 있는 가 싶다. 
국민들 앞에서 정직해야 할 위정자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앵무새처럼 정의와 공정이라는 탈을 쓰고 칼춤을 춘다. 그들 칼춤놀이에 식상한 국민들은 땅을 치고 통곡을 한다. 탈을 쓴 광대들은 그걸 보고도 아랑 곧 하지 않는다. 하기야 법률도 강자의 편익을 관철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논리라면 틀리지 않는 말이다. 하지만 권력이 정의를 전략으로 사용하면 그 정의는 하나의 폭력이 된다. 다시 말해 강자의 이익이 곧 정의다. 라는 논리여서는 안 된다. 
문제는 정의가 부재한 국가는 나라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근래에 정의는 오간데 없고 국정농단으로 온통 나라가 뒤숭숭 하다. 권력으로 정의를 짓밟다 대통령이 탄핵 교도소에서 수형생활을, 그 뿐만 아니라 권력의 상층부에서 세상을 입맛대로 주무르다 줄줄이 철창에 갇히고 세상이 바뀌는가 했더니 변한 것 없이 그게 그거다.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듯 여전히 날 뛰는 자가 여기저기서 선량한 국민들의 목을 조이고 있다.
그 때문에 민주주의가 최대 위기로 빠져 들고 있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특권계급이란 자들이 잘 못된 인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국민 너나없이 인간다운 삶을 위해 공정하면서 정의로운 법치국가의 길로 가야 한다. 광대들 그만 정의의 탈 공정의 탈을 벗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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